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여섯 차례나 전화해 “계엄법 위반이니까 체포하라”며 정치인 체포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종북세력” 등을 언급하며 계엄 당위성을 역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 청장의 변호인인 노정환 변호사는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조 청장 측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계엄 선포를 3시간여 앞둔 오후 7시20분쯤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에서 만났다. 윤 대통령은 “국회 탄핵” “종북세력” 등 단어를 반복해 사용하면서 약 5분간 결연한 목소리로 계엄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말했다. 조 청장 측은 “윤 대통령이 계엄의 정당성 등을 결의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지시사항이 적힌 A4용지 한 장을 주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여기에는 국회, MBC,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 꽃’ 등 접수·장악할 기관 10여곳이 ‘점령지’로 적혀있었다. 각 기관별 접수할 시간대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고 한다. 조 청장 측은 “(접수할 언론사가) MBC 외에도 더 있었다”고 밝혔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직후인 이날 오후 10시30분쯤 조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안보수사관 100명 지원, 정치인 15명 위치정보 확인, 선관위 3곳 군병력 배치 관련 경비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조 청장은 선관위 경비인력 지원 요청은 불상사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김준형 경기남부경찰청장에게 ‘차량 안에서 지켜보며 우발대기하라’고 지시했으나, 나머지 요청은 부당한 지휘로 판단해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 청장은 이날 밤 11시20분쯤 윤승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치안감)으로부터 “방첩사에서 수사관 100명 체포조 지원을 요청받았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거부하라고 지시했다.
여 전 사령관이 위치정보 확인을 요청한 15명 중에는 ‘김동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조 청장은 자신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누구냐”고 물었고, 여 전 사령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무죄를 선고한 판사”라고 답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재판장인 김동현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명단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등 전직 사법부 고위인사들과 우원식 국회의장, 이 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야권 인사들뿐 아니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포함됐다. 여 전 사령관은 한 대표 이름을 제일 마지막에 불렀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 포고령 발령과 군·경의 국회 투입이 이뤄진 뒤인 밤 11시37분 이후 조 청장에게 총 여섯차례 전화를 걸어 “계엄법 위반이니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조 청장 측은 “윤 대통령이 마치 스토킹하는 사람처럼 전화해 체포를 지시했다”고 했다.
하지만 조 청장 측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 생각해 참모한테 말 안 하고 혼자 묵살했다”고 밝혔다. 앞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도 계엄 선포 직후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라”고 직접 지시했고, 이후 여 전 사령관이 체포 대상자를 전달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