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12 대국민 담화’를 놓고 법조계에서 “변호인의 변론요지서 같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사태 내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으로만 29분을 채웠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담화 내용은 오히려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의 방어논리’를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 수사 속도만 높인 꼴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외교권 행사와 같이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 “헌정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것”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향후 수사·재판 과정에서도 법리를 치열하게 다투며 ‘무혐의’나 ‘범죄 불성립’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고검장을 지낸 A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담화는 엄청나게 잘 쓰여진 변론요지서”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은 화나는 얘기지겠만 자기방어가 법률적, 논리적으로 적혀 있다”며 “이 논리를 깨려면 검·경이 협조해 내란 목적이 있었다는 증거를 열심히 수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군검찰의 ‘특별수사본부’와 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국방부의 ‘공조수사본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 당일 지시와 행적을 증명할 물적·인적 증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12·12 담화는 ‘내란 공범’인 군·경 지휘부에 ‘나와 말을 맞추라’는 신호를 줬다고도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비화폰’(보안전화)으로 이뤄져 기록이 남았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계엄 공모자들을 다양한 통로로 회유할 가능성도 있다.
차장검사 출신 B변호사는 “윤 대통령은 수사기관에 ‘내가 언제 국회를 막으라 했느냐, 그때 지시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진술할 것”이라며 “이 담화로 혐의를 부정하며 사실상 ‘끝까지 버티자’고 메시지를 보냈으니 공범들이 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이 12·12 담화에서 윤 대통령의 ‘변론 전략’을 파악했기 때문에 수사 속도가 더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군·경 지휘부에 대해 상당 수준 조사가 이뤄진 상태여서 ‘말 맞추기’가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미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했고 이날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대통령과 충암고 선후배 관계인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은 내란의 핵심 주동자들로 지목됐다. 경찰에 긴급체포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구속기로에 서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 C변호사는 “검·경 입장에선 상대의 의도를 알았으니 수사 범위를 좁혀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국회 증언도 공개된 장소에서의 자백이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검증할 때 말을 뒤집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검·경은 여 전 사령관, 조 청장 등 주요 피의자의 신병을 차례로 확보하면서 혐의사실을 차곡차곡 쌓은 뒤 ‘내란 수괴’ 윤 대통령에게 출석을 통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경찰의 대통령실 압수수색은 경호처에 가로막혀 극히 일부 자료만 제출받았다. 더구나 대통령 사저에 진입해 윤 대통령을 긴급체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윤 대통령이 조사 출석에 불응할 경우 되려 법원으로부터 체포·구속영장을 발부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많다.
A변호사는 “검찰이 빠르면 다음주에라도 대통령에게 출석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어차피 불응이 예상된다면 차분한 ‘증거 다지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군경 간부들이 모두 책임을 ‘위’로 몰아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계엄 작전을 지휘한 ‘윗선’만 충분히 수사하면 ‘아랫선’이 아니라 곧장 ‘우두머리’ 윤 대통령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