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1953년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퇴임하며 국민에게 전한 고별 연설 내용 중 일부다. 트루먼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항상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문구가 새겨진 명패를 뒀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이 명패를 윤석열에게 선물했다. 이 명패를 자랑하던 윤석열은 명패에 쓰인 경구는 새기지 않았다. 취임 후 국정혼란에 ‘나 몰라라’ 했던 사례는 열거하기에 입이 아플 만큼 많다. 그러나 계엄 선포로 혼란을 자초하고도 ‘야당의 폭거’ 때문이라는 지난 12일의 담화문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망상은 현실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날부터 시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모였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광화문이 아니라 국회 앞이 무대라는 점이다.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모인 건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용산으로 갔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로 갔다.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 일대가 대규모 집회 장소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중심이 대통령에서 국회로 옮겨가길 바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계엄 선포가 국회 소집으로 153분 만에 끝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이 입법부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성난 촛불이 여의도로 옮겨오자, 광화문은 극우 성향 단체 차지가 됐다. 이들은 탄핵에 반대하며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친위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이 12·12 담화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것도 이들을 향해서 ‘돌격’ 신호를 주며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일 것이다.
계엄 전후의 구체적 정황이 군과 경찰 간부 등의 증언으로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다. 그만큼 연대는 두터워졌다. 14일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어린 자녀를 동반한 참가자들을 위해 한 시민이 ‘키즈버스’를 마련했다고 한다. 선결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페이지, 화장실을 안내하는 페이지도 생겼다. 집회 주체가 2030세대로 바뀌면서 문화도 달라졌다. 촛불은 K팝 응원봉으로 대체됐고, 현장에선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온다. 국민과 국회에 총부리를 들이댄 대통령에게 청년들은 응원봉으로 맞서며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윤석열을 가리켜 “다섯 살짜리 꼬마가 총을 들고 있는 격”이라고 빗댄 적이 있다. 계엄의 밤을 되짚을수록 이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아찔하다. 이젠 탄핵밖엔 없다. 지금부터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든 우리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