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 LED 응원봉처럼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래 가는 그러나 또렷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번 시위에서 동료 2030여성들을 보면서 느낀 건, 결국 다들 누군가를 깊이 아끼고 그와 연결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대상이 아티스트이든 함께 ‘덕질’하는 팬이든, 그이와 깊게 연결되어 본 경험이 거리로 나선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깔려 있던 힘이 아닐까요.
요빙 대학에서 헌법학개론을 배운 적이 있어요.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헌법의 행간에서 뜻밖에 국민을 향한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평화 속에서 피로 쓰인 역사를 배운 사람으로서, 내가 사랑하는 나라와 이 체제, 나를 사랑하는 헌법을 유린하는 사태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12월7일, 국회 앞으로 달려갔어요. 현장에서는 좌절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패배의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 헌법을 더럽힌 사람들을 전부 끌어내릴 때까지 나갈 겁니다. 혐오와 부정은 언젠가 반드시 소멸되고, 사랑이 반드시 이깁니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이 끝내 이기는 방향으로만 발전했다고 믿어요. 우리는 그저 아이돌만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빠순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인생을,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민주시민’입니다.
단풍 수많은 응원봉의 등장이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 또는 세대 통합처럼 보여 감격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단지 매번 응원봉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를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같은 편에 서서 힘을 보탠다고, 응원봉을 들었다고 이제야 우리의 존재가 유의미하다는 듯 칭찬하는 것이라면 좀 씁쓸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감격과 감동은 우리의 존재를 낮춰 보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양지수 윤석열 정부가 표심을 얻은 방법 중 하나는 분명 여성혐오였고, 그 정부가 실패한 지금, 우리는 대선 당시 여성혐오 공약과 발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현 시국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약자를 짓밟는 권력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도경 단순히 2030 여성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 외에도,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운동과 밀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친구들은 보통 무관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며 경찰을 밀고 시민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잖아요. 친구가 먼저 이 영상을 보내면서 민주노총을 칭찬하더라고요. 민주노총과 2030 여성들은 분명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여요. 여전히 성평등한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함께 투쟁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롯데우승 계엄령 선포 후 참여하는 시위가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20대 여성으로서, 국민으로서 가야 했기에 갔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의지할 수 있었던 건 수도 없이 흔들었던 좋아하는 야구팀의 응원 도구(짝짝이)였습니다. 국회 앞에 도착해 가방에서 짝짝이를 꺼내는 순간 옆에 계시던 20대 여성분이 롯데 팬이냐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헤어지며 내년에 꼭 잠실야구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건 이름과 응원하는 팀뿐이었지만 우리는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을 했습니다.
정송희 다른 사람이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현재는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2030여성들이 조명받고 있는 상황인데, 앞서 민주주의를 이끌어주었던 405060 여성분들, 그리고 집회에 활발하게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성별을 지닌 퀴어 분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길 하는 바람입니다.
박진솔 우리가 누리는 평화, 자유가 아무런 대가 없이 얻어낸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피 위에 흘려진 것인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 가는 길마다 사람이 많아서 저 혼자 이런 불의에 화가 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데쳄 계엄령 직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올해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서 전 국민이 외상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집회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는 자리였습니다.
임슬아(두라) 서울 외의 지역에서도 계속 집회를 하는데 언론은 너무 서울만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지역의 집회에 참여해 머릿수를 채우고 싶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고,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인 ‘덕질 용품’을 들고 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거북이 저는 당산동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국회의 파란 돔을 보면서 일합니다. 토요일에 표결에 불참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고 퇴근 후 바로 달려갔습니다. 나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추위에 떨며 그곳을 지키고 있는 분들께 작은 보탬이 안 되면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뒤늦게라도 그곳에 함께 서 있을 때, 조금이나마 저는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비겁하지 않았고,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비봉 저는 30대인데 노래하고 듣는 것을 좋아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서’ 두 곡 빼고는 다 불렀어요. 공교롭게도 제 양쪽에 큰 목소리로 노래를 하시는 여성분이 계셨는데요. 제 왼쪽의 10~20대로 보이는 분은 최근 아이돌 노래는 애드리브와 코러스까지 부르시는데 2000년대 노래를 못 부르시고, 제 오른쪽의 40~50대로 보이는 분은 제가 못 부른 두 곡만 크게 부르셨어요. 다양한 세대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시위를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음으로 왔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김예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나온 시위 현장은 나라 정세와 반대로 너무 따뜻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에서는 추운지도 몰랐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온몸이 떨리더라고요. 따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몸소 느꼈네요!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참여하려고 합니다. 거세게 분노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면 너무 쉽게 꺼질 것 같아서요.
이수영 여전히 시위를 통해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은 조금 남아 있지만,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비슷한 인구학적 섹터에 놓인 사람들, 또는 다르더라도 같은 의제로 뭉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지점에 대해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탄핵이 끝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주원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목적이 큽니다. 저뿐만 아니라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의 마음은 다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데님 이번 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다. 충격을 받고 잠을 못 자고 생활이 망가질지언정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깃발을 들고 걷지는 못해도 뉴스를 보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친구들에게 말할 것이다. 시위에 나가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챙겨입고 몸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되어, 사람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요.”
탄핵 집회의 주인공이 된 ‘응원봉’과 ‘응원봉을 든 2030여성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30 여성들에게 집회 참여 소감과 참여 계획, 다짐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3일 오후 현재 129명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독자들은 “그동안 일궈 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름다웠다”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를 부정하며 탄생한 정부의 종말을 목격하고 싶다” 등 많은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중 일부를 나눠 발췌했습니다. 전문은 QR코드를 연결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