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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공화국의 적과 수호자

비상계엄 선포를 확인하고 부랴부랴 하던 일을 접었다. 집으로 향하는 광화문 대로에 계엄군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방송과 인터넷을 동시에 켜니, 한쪽은 계엄포고령을 방송하고 있고, 다른 쪽은 국회의사당 내 대치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나는 페이스북을 켜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 백척간두에 서다.

“내일 아침, 한국 언론은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 따라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들여 굴욕적으로 입을 다물 것인가. 아니면 엄중히 사태를 직시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결연히 언론자유를 실천할 것인가.”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언론사마다 기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현실인식도 다르겠지만, 굴욕적으로 계엄사령부의 언론 통제를 수용하는 언론은 스스로 선언한 자유를 부정하는 격이라고.

용감하고 현명한 시민 덕분에 국회는 2시간35분 만에 계엄해제를 의결했다. 덕분에 우리 언론은 다음날 계엄사의 언론 통제를 마주할 일이 없었다.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 금지’를 명령한 계엄사 포고령 제1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다행이라 되돌아보겠지만, 황당함에 허탈함까지 느꼈던 4일 새벽 1시 우리 언론인들은 그 혼란한 내란 정국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행동이 생각을 증거한다. 나는 아직도 그 위태로운 비상계엄의 밤에 카메라를 들고 국회로 뛰어간 시민과 기자들이 가장 훌륭했다고 믿는다. 그날의 영상과 사진이 남아 있으니, 언젠가 그 모든 난리법석에 대해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 그때의 용감한 활동을 함께 기억하고 칭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 특히 국회 앞 건널목에서 장갑차를 막아선 청년과 그 사진을 찍어 공유한 시민, 그리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특수부대원을 따라다니며 동영상 중계를 한 기자는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우리 기자들은 그날 새벽 이후 일관되게 민주·정의 편에 서서 공화국의 헌법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취재하고 발언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민주화에 편승해서 자유를 누리는 쪽이었지 민주정을 강화하는 데 별로 기여한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아 온 주류 언론은 이번에 일제히 비상계엄이 시대착오적이라고 꾸짖거나 심지어 대통령을 단죄해야 한다고 나섰다. 우리 6공화국에서 주류 언론이 이렇게 한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싶다. 나는 주류 언론이 헌정 질서를 위협한 공화국의 적을 지목하고, 그의 수하들에게 혼란 속에서 경거망동하지 말라 경고한 데 감동했다.

좋은 취재 기사들이 많았다. 우리 언론은 이런 위기 순간에 누가 무슨 일을 했고 또한 하고 있는지 증거와 증언을 좇아 기록하는 게 언론의 임무라는 듯 착실하게 기사를 생산해서 보도하고 있다. 그중에 감동적인 기사도 있다. 특히 조선일보 6일자 1면에 실린 707특수임무단과 1공수여단의 군인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칭찬하고 싶다. 시민으로부터 반란군, 반역자, 윤석열의 개와 같은 비난을 듣던 그들도 결국 시민의 아들로서 시민을 힘으로 제압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불법 명령을 마지못해 따르는 듯 시늉만 했다는 사정을 잘 드러낸 기사였다.

주류 언론은 또한 누가 언제부터 윤석열과 음모를 꾸몄는지, 누가 불법 명령에 결연히 항거했는지, 그리고 누가 운명의 순간에 자신의 높은 지위와 명예를 배반하고 비겁하게 처신했는지 폭로하는 중이다. 기자가 평소에 갈고 닦던 인맥과 취재력은 이런 기사를 쓰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듯 말이다. 시민과 국회가 영웅적으로 비상계엄을 해제한 지 단 12일 지났다. 그제 겨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끝났을 뿐이다. 이제는 언론의 시간이 열린다. 누가 공화국의 적인지 철저히 취재해서 폭로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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