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수사팀 구성 5일 만인 지난 11일 현직 대통령에게 소환장을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다. 윤 대통령이 15일 피의자 신분 출석하라는 검찰 요구에 응하지 않아 실제 조사는 일단 불발됐다. 검찰이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움직인 것은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 내에선 “어차피 특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만큼 특검 출범 전 최대한 빨리 윤 대통령 신병을 확보해 수사를 진행해 두는 게 관건”이란 얘기가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6일 특별수사본부 출범 이후 검찰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핵심 5인방 신병을 확보했거나 확보를 앞두고 있다.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상의했다고 밝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윤 대통령·김 전 장관과 계엄포고령 1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구속됐다.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육군수도방위사령관은 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검찰은 이날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의 구속영장에는 모두 윤 대통령이 내란 공모 관계로 적시됐다.
검찰은 이들을 조사하면서 윤 대통령이 내란 수괴로서 비상계엄 사전준비·선포·실행을 지휘한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 전 사령관과 이 전 사령관은 국회 진입 당시 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에서 끌어내 비상계엄 해제결의 요구안 통과를 막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윤 대통령의 ‘경고성 계엄’ 주장을 허물 수 있는 진술이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에 대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 여 전 사령관이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구체적인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줬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증거를 잡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시켜 서버를 확보하려 했다고 대국민 담화에서 시인했다.
검찰이 신속하게 윤 대통령에게 소환을 통보한 건 수사기관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주요피의자에 대해 출국금지, 압수수색, 소환조사 등을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중 윤 대통령 신병을 먼저 확보하는 기관이 수사 주도권을 쥐게 된다. 경찰은 이날 “현재까지 윤 대통령과 관련해 소환조사, 영장 신청 등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소환 요청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여론이 높아지던 2016년 11월4일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밝혔지만 이듬해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난 뒤 민간인 신분이 돼서야 검찰에 나왔다.
검찰은 오는 16일 윤 대통령에게 다시 날짜를 정해 소환을 통보할 방침이다. 특수본은 윤 대통령이 계속 출석을 거부할 경우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란 수괴 혐의의 경우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중대범죄인 데다,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로 윤 대통령 직무가 이미 정지돼 체포에 따른 국정 공백 우려는 사실상 사라쟜다. 윤 대통령이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출석을 재차 통보하는 것은 체포영장을 발부받기 위한 명분 쌓기 성격이 강하다. 윤 대통령과 함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했던 A변호사는 “영장이 필요 없는 긴급체포를 시도할 경우 경호처와 충돌이 예상된다”며 “법원에서 발부받은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경우 경호처가 법적으로 거부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과 공수처가 윤 대통령 신병을 확보하려 들 수 있어 소환 시기를 마냥 늦출 수도 없다. A변호사는 “언론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다 진술을 하는 등 증거가 충분하다”며 “수사기관 간 속도전이 붙은 상황에다 빨리 수사하라는 국민 여론도 높아서 검찰이 정무적인 고려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