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로 한국 국민이 입을 외교적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미국이 대통령 윤석열의 헌정 질서 파괴에 선을 그으며 정상 간 소통이 멈춰섰고, 그의 “중국인 간첩” 발언으로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한·중관계 개선도 중단됐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계획된 일본과의 외교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폭주하던 ‘자해 외교’에 이 정도 선에서나마 제동 건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선출 권력이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권한대행 체제는 제한적 외교 행위나마 국회·국민과 소통한 뒤에 해야 외국 정부가 진지하게 상대해줄 것이다. 세계 질서 급변을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가 한 달여 뒤 출범해 이 체제는 가능한 한 짧은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생각해볼 것은 윤석열이 추동한 한·미·일 협력 같은 신냉전 지정학 전략을 관성대로 이어갈지다. 국회가 탄핵소추서에 포함했다가 빼긴 했지만, 한·미·일 일변도 가치외교는 파탄 선고를 맞았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자유민주주의 가치 연대를 표방하며 손잡았던 한국 정상이 전혀 그런 가치에 충실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에 놀랐을 것이다.
마침 2023년 8월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합의에 도장을 찍은 3국 정상이 물러났거나 퇴장을 앞두고 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촉진하는 전략이었는지 의문이다. 한국으로선 미·일과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그 수준을 이렇게까지 높인 건 필연적으로 북·중·러와의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한·미·일 협력은 일본 과거사 문제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가능했는데, 윤석열의 그런 접근은 국내 동의에 기반해 있지 않아 민주적 원칙에 반했다. 미국은 자신의 단기적 구상에 이롭다는 이유로 이를 환영했고, 일본은 상응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됐다. 이번 사태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이 국내에서 무슨 일을 해도 한·미·일 협력에만 충실하다면 지지를 굳건히 했던 미·일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은 민주·공화를 막론하고,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자신의 전략에 유리하다고 믿어왔다. 이제 그런 관성은 깨질 수밖에 없다. 리처드 그레넬 대북특사를 앞세워 벌써부터 변화 조짐을 보이는 트럼프 등장도 한 요인이지만, 윤석열 체제의 붕괴를 본 뒤 더 분명해졌다. 한국의 냉전적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고, 미국에 이롭지도 않다.
윤석열 대통령(왼쪽부터)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가 지난 2023년 8월18일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미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