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조기집행하기로 했다.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25년도 세출예산 574조8000억원 중 431조1000억원(75%)을 내년 상반기에 배정했다. 내수 부진 심화 등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인데, 이것만으로 꺼져가는 내수 불씨를 되살리기엔 부족하다. 적극적 재정 투입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서둘러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의 느닷없는 12·3 계엄 선포로 한국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비틀대던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윤석열 집권 이후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가계의 주름살은 깊이 파인 지 오래고, 이로 인한 내수 부진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사정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도 심각하다. 여기에 비상계엄과 탄핵이 겹치며 연말연시 대목을 기대하던 골목상권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한국신용데이터의 이달 첫째 주(2~9일)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의 신용카드 매출은 지난해보다 9% 줄었다.
내수 한파는 성장률 저하로 이어지고 금융·외환 불안도 가중될 수 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대외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경제 충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투자은행 및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은 탄핵 정국으로 한국 경제에 성장 하방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고 본다.
내우외환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추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재정건전성을 이념처럼 떠받들던 윤석열의 직무가 정지돼 정책운용에도 숨통이 트인 상태다. 대통령 탄핵이 아니라도 상식적인 정부라면 재정 출동으로 한파가 몰아치는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 당연한 정책선택이다. 마침 이날 국회를 찾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4단체장들도 “내수진작을 위한 추경 편성”을 요청했다. 한은도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 추진함으로써 대외에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 작동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추경안에 대해 “내년 3월이든 6월이든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헤아리려 하기는커녕 딴지나 거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당리당략을 앞세워 추경을 미루다가는 재정 투입의 골든타임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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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 회장), 우원식 국회의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왼쪽부터)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4단체 비상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제계는 내수 진작을 위해 빠른 추경을 요구했다. 박민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