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탄핵에서 협상의 정치로](https://img.khan.co.kr/news/2024/12/17/l_2024121801000542000055331.jpg)
조선은 탄핵의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탄핵(彈劾)이 463번 언급되고, 유의어인 대론(臺論), 거핵(擧劾), 탄론(彈論), 대탄(臺彈) 등을 합치면 1852건에 이른다.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진 관료들을 대간(臺諫)으로 임명하고 면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거침없는 직언의 길을 보장해 주었다. 이마저도 당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왕이나 권세가의 폭주를 막는 제도적 기능은 이어졌다.
탄(彈)은 무기로 이루어진 글자다. 왼쪽은 활, 오른쪽은 돌을 던져서 짐승을 잡는 도구의 모양이다. 핵(劾)은 돼지의 각을 뜨듯 힘껏 캐묻는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일찍부터 죄지은 자를 처벌한다는 뜻으로 사용해 왔다. 이 두 글자가 결합하여 특정한 대상을 정조준하여 처벌한다는 의미가 된 것이다.
2024년 대한민국이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으로 뜨겁다. 12월3일까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주장이었으나, 그날 밤 계엄령 포고 이후로 탄핵은 헌법 질서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여전히 당리당략을 추구하거나 황당무계한 음모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고선 탄핵에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탄핵 이후다. 중차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당정과 여야를 아우르는 전폭적 협치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라는 궤변을 내놓으며 파렴치한 자기방어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만이라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바른길일 텐데, 소수의 극렬 지지자를 긁어모아 싸움이라도 다시 일으킬 태세다.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던 고관이라도 일단 탄핵이 되면 직무를 멈춘 채 사직상소를 올리고 처벌을 기다리는 것이 조선시대의 관례였다. 물론 사직상소 자체가 고도의 정치 행위였고, 처벌을 기다린다는 말속에 본인의 정견을 담아 호소하는 것 역시 관례였다. 다만 거기에는 적어도 정치적 수사(修辭)와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대통령을 정조준한 탄핵은 이제 온당한 절차의 심의에 맡기고, 비상시국을 헤쳐 나갈 협상의 정치로 시급히 나아갈 때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더 허비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