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공원시민회의가 19일 신용산역 인근에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금지 조치’ 무효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찰 20여명이 용산어린이정원 방향에서 이들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이예슬 기자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된 것을 비판한 시민들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원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이주영)은 19일 “원고들에 대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거부 처분은 무효”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관련 기관인 대통령경호처 요청으로 원고들의 입장을 제한한 것이 밝혀졌으나 피고 측은 현재까지도 어떤 이유로 입장 제한이 필요하다고 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아 행정처분 시 근거 및 이유 제시의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법률의 명확한 근거 없이 위법한 내용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행정절차법을 위반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김은희 용산공원시민회의 대표 등 6명은 온라인으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신청했으나 관리 주체인 LH로부터 ‘예약불가’를 통보받았다. 사실상 출입금지를 당한 것이다. 김 대표 등은 이와 관련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김 대표 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린이 정원에서 윤 대통령 부부를 자찬하는 색칠 놀이가 진행된 것을 비판한 이후로 부당한 출입금지 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해왔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경호처는 지난해 8월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 경비 및 군사시설 보호 등을 고려해 통제한 것”이라고 했다.
LH 측은 그간 원고들에 출입금지 조치를 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 4월 29일 재판에서 법원은 LH 측에 “해당 기관에서 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요청을 한 구체적인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5월 3일까지 보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LH 측은 답변 기한을 어기고 “대통령경호처로부터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김 대표 등의 공원 입장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요청받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 6월 27일 재판에서 “실제 거부 처분의 구체적 이유가 기재된 문서가 있는지, 문서를 제출할 수 없으면 이유가 무엇인지를 담은 의견서를 내라”고 요구했다. LH 측은 이마저도 제출하지 않았다.

김은희 용산공원시민회의 대표가 19일 용산어린이정원 앞에서 출입 금지 조치를 해체를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이예슬 기자
용산공원시민회의는 이날 오후 4시 신용산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경호처는 사과하고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 직후 어린이공원으로 향해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났으니 하루빨리 출입 금지 조치를 해제하라”며 항의했다. 경광봉을 든 경찰 20여명이 이들을 따라오며 지켜보자 “경호처의 입장에서 시민을 수사한 경찰도 반성하라”며 외치기도 했다.
용산공원시민회의 변호인인 서창효 변호사는 “오늘 재판부가 내린 판결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피고는 즉시 원고들이 용산 어린이 정원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관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대외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내부 규정으로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우리를 출입금지한 경호처장이었다”며 “김 전 장관은 국민이 조금이라도 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출입을 금지하고, 끌어내고, ‘입틀막’하는 것을 주도하며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