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햡뉴스
19일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자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일부 기업은 내년 사업계획 조정을 검토하거나 수입처 다변화에 나섰다.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해 고환율에 취약한 업종인 석유화학, 철강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효율적인 환율 변동 위험 관리를 위해 주기적인 환위험 모니터링을 하고, 환노출 축소 전략을 유동적으로 수립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자금 운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순이익도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식품업계도 걱정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환율 때문에 상당히 힘든 상황”이라며 “내수 부진에다 원재료가 많이 올랐고 고환율까지 겹쳐 ‘삼중고”라고 말했다. 일부 식품기업들은 내년 사업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다른 식품기업 관계자는 “환율 1400원 정도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세웠는데 환율 상승을 반영해 계획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입처 다변화나 내부 비용 절감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환율 호재 업종으로 알려진 반도체와 자동차 기업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당장 해외 투자비 증가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만큼 설비투자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170억달러(약 24조6000억원)를,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를 미국 공장 설립에 투자할 예정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투자비 증가 등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기아 측은 “달러 강세 장기화에 대비해 기축통화 시장에서 직접 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현지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배터리 공장 신·증설을 추진 중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K-배터리 3사도 현지 투자액 부담 증가를 우려하며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외화 부채로 인한 평가손실보다 규모가 클 것으로 분석한다”면서도 “국내와 해외 매출의 비중에 따라 제조사별로 희비는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LG경영연구원 등 8개 기업 경영경제연구소장은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연 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대내 리스크로 원·달러 환율 상승을 꼽았다. 이들은 “원화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민간소비 냉각, 기업 생산비용 증가에 따른 투자 및 고용 위축 등 내수 경제 부진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면서 “비우호적 대외 환경으로 수출 경쟁력마저 약화된다면 향후 수년간 한국 경제 반등 모멘텀이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지금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6년에는 대외환경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며 “이 시기에는 원화 약세에 따른 수출개선 효과가 원부자재 수입단가 상승 부담을 상쇄했지만, 최근 환율 급등 상황에서는 수출단가 하락에 의한 물량 확대 효과가 과거보다 축소돼 기업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예정된 경제정책을 흔들림 없이 진행하고 재정 조기 집행 등을 통한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