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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아우성

양평 서종면 문호천

아침이면 항상 머물게 되는 문호천의 가을과 겨울 풍경. 늦가을에 이 마을로 자리를 잡은 뒤 곧 겨울을 맞이하면서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계절의 역동성을 실감하게 된다. ⓒ임종진

아침이면 항상 머물게 되는 문호천의 가을과 겨울 풍경. 늦가을에 이 마을로 자리를 잡은 뒤 곧 겨울을 맞이하면서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계절의 역동성을 실감하게 된다. ⓒ임종진

무겁게 두려운 시간이었다. 평온하던 일상마저 한순간에 무너졌다. 잠을 못 이룬 채 여러 채널의 실시간 뉴스를 수시로 경청하며 팔딱거리는 가슴을 달랬다. 불안을 채워준 것은 시민들의 행동과 함성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 12월3일 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아스팔트를 메운 시민들의 가열찬 아우성은 실로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동력으로 전환된 그 아우성은 황망하기 그지없는 이 초유의 내란 사태를 주범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여전히 두려움을 걷을 순 없지만 그 덕에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경기도 양평 서종면의 한 작은 동네로 이주한 지 두 달이 채 안 되었다. 우리 동네는 서쪽으로 북한강을 옆에 둔 채 해발 354m 높이의 작은 산인 푯대봉을 끼고 있다. 산과 강을 품고 있는 아늑하기 그지없는 시골이다. 인근에는 중미산, 유명산 등의 자연휴양림이 수려하게 펼쳐져 있고 흐르는 강물이 자연스레 조성해준 두물머리, 세미원 등을 비롯해 갤러리, 찻집을 비롯한 볼 것 즐길 것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산새들이 재재거리는 소리의 향연도 정겹기 그지없다. 가을 끝 무렵에 이사했기에 마당 너머로 보이는 산자락의 울긋불긋한 자태들에 넋을 잃는 첫 대면의 순간도 있었다. 공기는 말할 것 없이 좋다.

이른 아침 늦둥이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 오는 길에 일부러 차를 멈춰 들르는 곳도 생겼다. 완전 자연 그대로의 형태로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문호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길모퉁이다.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을 향했다가 S자로 휘어 흐르는 이 천변으로 시선을 옮기면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는 오리떼 가족들과 왜가리가 무심한 듯 반겨줄 때도 있다. 이 자리에서 가을과 겨울로 계절변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절로 스며오는 평온감에 취하기도 했다. 아직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봄이 되면 온천지에 벚꽃 향기가 퍼진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한가득이다. 주변에 맛집들도 많다. 오랜 지인이자 이 마을로 우리 가족을 이끈 한 주민은 ‘이 동네는 맛없으면 곧 망한다’며 식당 순례를 시켜주기 바쁘다. 주인장들은 대부분 환한 웃음을 머금은 서글서글함으로 대해주기까지 한다. 식당뿐 아니라 못 몇 개 사러 간 철물점이나 편의점 주인장들도 마찬가지로 생글거린다. 이전엔 느끼기 쉽지 않은 이 밝은 표정들에 처음 며칠 동안은 오히려 생경스럽기도 했다.

이 모든 마을의 정경들 대부분은 수평적 시각 선상에서 이뤄진다. 40여년간 대도시에서만 살 때는 도리없이 수직적 시각을 가져야 했다. 어디를 가도 찌를 듯 높은 빌딩과 빽빽이 둘러싸인 공동주택 탓에 나름 피곤함이 적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안 타면 오르기 어려운 곳들을 드나들어야 했고 고층 아파트인 옛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사 후 눈의 피로가 한결 줄어드는 걸 보니 이 수평적 시선이 내가 느끼는 평온감의 일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골살이의 현실이 마냥 편할 수는 없을 것이나 이 또한 살아가면서 변화되고 채워질 일이려니 한다.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작금의 상황에 가슴의 눈에 불을 켠다. 매일 맞는 낮과 밤 모두 여전히 짙은 안개라도 서린 양 앞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소중한 나의 일상을 지키듯 주체적 존재인 이 나라의 한 시민으로서 정당한 아우성에 늘 동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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