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툰툰한 하루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 스틸컷. 바람북스 제공.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 스틸컷. 바람북스 제공.

[오늘도 툰툰한 하루]‘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긴 답변 같은 그래픽노블 ‘이것이 새입니까?’

흥미로운 만화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격주 금요일 오후 찾아옵니다.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은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노란 바나나를 두꺼운 덕테이프로 벽에 붙인 현대미술 작품이요. 카텔란이 2019년 미국 마이애미 아트 바젤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최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86억원에 낙찰됐습니다. 작품을 산 가상화폐 사업가는 86억원 짜리 바나나, 아니 작품을 한 번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아마 애초에 그러려고 산 거겠죠? 그가 바나나를 먹는 것까지가 작품의 완성이라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현대 예술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바닥에 큰 원 하나를 그려놓고 ‘기린’이라는 제목을 붙인다고 그걸 현대미술로 봐주거나 86억원을 주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만약 카텔란이 그렇게 했다면 달랐겠죠? 그럼 어느 무명의 예술가라면 어땠을까요. 어쨌든 예술가이기 때문에 예술로 봐줬을까요. 하지만 직업이 예술가이고 아니고에 따라 작품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현대적이진 않지 않나요?

카텔란의 작품은 개념, 관념이 미학적이고 물질적인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념미술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바나나를 삼켜버린 그 사업가는 덕테이프 붙은 바나나가 아니라, 그 ‘개념’에 돈을 지불한 것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 수십억원을 쓰는 2024년 미국 뉴욕의 모습을 루마니아의 조각가 브랑쿠시(1876~1957)가 보면 얼마나 허탈할까요. 자기는 ‘물질적으로 실체도 있고 아름답기도 한’ 조각상이 미술 작품임을 인정받기 위해 긴 재판까지 했거든요.

오늘 오마주에서 소개할 작품은 미국 뉴욕에서 브랑쿠시의 작품을 놓고 벌어진 실제 재판을 소재로 한 그래픽 노블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아르노 네바슈 글, 그림) 입니다.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 스틸컷. 바람북스 제공.

<이것이 새입니까? 브랑쿠시와 세기의 재판> 스틸컷. 바람북스 제공.

브랑쿠시는 1926년 미국 브루머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 위해 배로 작품을 싣고 옵니다. 그가 애지중지 싣고 온 작품 중에는 청동 조각상, ‘공간 속의 새’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길고 매끈하게 뻗은 이 조각상은 이제 막 날아오르려고 하는 새를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실제 새처럼 부리도, 날개도 없지만, 브랑쿠시는 한순간도 이 조각상이 새라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뉴욕항 세관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세관원들은 이를 ‘산업용 물품’으로 분류하고 4000달러의 세금을 청구합니다. 예술 작품의 경우 수입해도 세금을 내지 않지만, 그 외 물건은 제조물 관련 조항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재판으로 갑니다. 재판에서는 브랑쿠시의 작품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집니다. ‘예술 관련 학업을 어디서 마쳤는지’ ‘본인의 손으로 만든 원본이 맞는지’ ‘복제품은 없는지’ ‘실용적인 쓸모가 있는지’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작품을 만드는데 ‘줄질과 연마질’을 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혹시 브랑쿠시는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이거나 장인이 아닌지’ 같은 의문도 제기됩니다. 이 질문은 ‘그럼 장인은 예술가가 아닌지’ ‘노동자는 예술가가 될 수 없는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고요. 만약 이 청동 작품에 날개와 깃털 같은 진짜 새의 속성이 표현되었다면, 그때는 예술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논의도 펼쳐지죠.

흥미로운 것은 재판이 벌어진 시점이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미술 장르)’ 장르가 시작된 지 거의 10년이 다 된 때였다는 겁니다. 만화에서도 변호사가 뒤샹에게 “(대중은) 아무 문제 없이 당신의 ‘레디메이드’를 받아들였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재판으로 후퇴하고 있는 셈이죠” 라고 화를 냅니다.

132쪽의 얇지 않은 그래픽노블이지만, 재판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돼 지루하지 않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132쪽짜리 아름답고 긴 답변이기도 합니다. 브랑쿠시의 조력자이자 친구들로 마르셀 뒤샹, 에릭 사티, 만 레이 등 유명한 예술가들이 툭툭 등장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재판 결과는 그래픽노블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는게 좋겠습니다.

그래픽노블에 등장하는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그래픽노블에 등장하는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Bird in Space)’.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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