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검찰의 기관 심벌.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각 수사기관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출범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새 수사기관들과 검찰이 각자의 권한을 주장하며 수사에 뛰어들었다. 새 기관 출범 당시 수사권에 관한 일부 모호한 규정이 중복 수사 같은 문제를 일으켰다. 영장청구권 문제를 정리하지 못해 또 수사 가로채기 논란을 되풀이 하는 상황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 직접 수사 범위에서 내란죄를 없애고도 여전히 검찰이 수사를 하는 문제도 있다.
현직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내란 혐의라는 사건 중대성을 고려해 각자 새 전담팀을 출범시키고 다른 기관과 합동 팀을 구성하면서 명칭까지 헷갈릴 정도로 혼선이 빚어졌다. 검찰과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로 이관하면서 혼선은 다소 진정됐지만 기관 간 경쟁 구도는 여전해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21일 기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기관은 크게 세 곳이다. 먼저 검찰과 경찰청 국수본이 각각 인력을 대거 투입해 자체 편성한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검찰 특수본)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경찰 특수단)이 있다. 검찰 특수본에는 군 검사들이 파견돼 수사에 참여하고 있다. 경찰은 공수처, 군 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 등과 손을 잡고 공동조사본부(공조본)를 꾸렸다.
이처럼 각 수사기관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주요 피의자·참고인을 각자 소환하는 등 ‘중복수사’ 논란이 벌어졌다. 법원이 비상계엄 관련 압수수색 영장 등이 복수의 수사기관에서 신청·청구됐다는 이유로 기각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한 데 이어 검찰도 지난 18일 윤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하기로 합의하면서 수사기관 간 경쟁과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처럼 보였다.
이런 전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란 혐의 수사에 나선 기관의 주요 지휘라인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계엄군의 인력 동원 등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기관 간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인다. 검찰 특수본은 지난 19일 ‘국회의원 체포조’ 동원 의혹을 받는 국수본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 국수본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군 방첩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의원 체포조에 강력계 형사들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우종수 국수본부장도 검찰에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아직은 참고인 신분이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하고 사전모의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전담하는 자체 수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온 국방부 조사본부 역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지난 19일 검찰은 박헌수 국조본 조사본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수사 현황을 보고받을 수 있는 ‘직속수사팀’을 구성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곳에 국방부 조사본부 인력을 포함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 때문에 군인권센터는 지난 12일 국방부 조사본부를 내란에 가담했단 의혹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내란죄를 단독으로 수사 개시할 권한은 본래 경찰에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내란죄는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개시 대상 범죄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란 사건의 경우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청법과 공수처법은 수사 개시가 가능한 범죄의 ‘관련 사건’은 직접 수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 검찰과 공수처도 내란 사건 직접 수사에 나섰다.
이런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계엄 사태 수사 초기에 컨트롤 타워로서 검·경·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철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검찰은 내란죄 수사를 할 수 없고, 경찰은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 없으니 서로 수사 영역이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수사의 큰 흐름을 잡고 가려면 수사 기관들이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