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에 가려져 여전한 ‘차별과 배제’···“촛불은 더 낮고, 넓고, 다양해져야”

이예슬 기자    김정화 기자
페미당당 활동가 심미섭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페미당당 활동가 심미섭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 갈무리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됐더. 소외당하던 이들의 목소리는 ‘국회 탄핵안 가결’을 끌어내는데 큰 힘을 보탠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무대 아래에선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목소리가 흘렀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집회 무대에 오른 페미당당 활동가 심미섭씨(33)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가 “이 자리에 계신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가 스스로 성소수자임을 밝히자 “저 여자 끌어내려라”며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씨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저를 향한 야유를 보면서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말하는 게 위험하다고 느낀 시민들이 무대 아래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환호하는 그 광장이 누군가에겐 안전하고 평등하지 않은 곳이었던 셈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는 가수 DJ DOC가 노래에 ‘미스박’ 등 여성 혐오적인 가사를 써서 논란이 됐는데, 이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페미당당의 회원들이었다. 결국 그 노래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심씨는 “소수자들이 이번 집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과거부터 계속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이라며 “이들이 광장의 주인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장의 자성’은 다른 곳에서도 호출됐다. 여성단체들은 지난 6일 집회에서 발언자로 선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를 비판했다. 김 대표는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실명을 노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됐다. 여성단체들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하는 윤석열이 퇴진한 세상이다. 동시에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부정하고, 반성하지도 않는 김민웅 같은 사람이 시민의 뜻을 공적 영역에서 대표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밝혔다. ‘젊은 여성들이 많으니 남성들도 집회에 나오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누리꾼의 손가락질을 받은 대학교수도 있었다.

집회에서 청소년 참가자를 향한 시혜적인 시선도 여전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17)는 “주최 측이 ‘청소년을 기특하게 여기지 말라. 동료 시민의 한 사람이다’라는 구호를 계속 외치는 건 좋았는데,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해야 할 시기에 이런 데서 고생한다’고 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탄핵 집회가 청소년에게 교육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도 이미 민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온다는 걸 다시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파편화된 광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치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기쁨과 환호에 가려진 그 ‘작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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