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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전면 금지, 차벽 설치까지···경찰의 위법한 ‘남태령 시위’ 차단

입력 2024.12.23 16:54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22일 트랙터가 멈추어 서 있다. 정효진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22일 트랙터가 멈추어 서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를 타고 상경 시위에 나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시위대를 경찰이 서울 서초구 지하철 남태령역 인근에서 여러 겹의 ‘차벽’으로 차단했다. 경찰은 32시간 밤샘 대치를 벌인 다음 날 오후 4시 30분쯤 기동대 버스를 철수시켰다. 전문가들은 기존 판례, 헌법재판소의 결정 등으로 비추어 보아 경찰이 공권력을 위법하게 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행진 신고 날짜 하루 전인 20일에야 전농에 ‘옥외집회(행진) 제한 통고서’를 보냈다. 통고서를 보면 경찰은 ‘트랙터와 화물차의 이용은 불가’하고, ‘행진이 아닌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행진 경로 대부분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주요 도로’이고, 화물차·트랙터가 행진할 경우 교통 불편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트랙터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일부 제한은 실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는 2016년 11월에도 교통 체증이 원래 심한 지역에 1000대 이상의 농기계, 화물차량이 이동한다면 교통 불편을 줄 것이 명백하다며 집회를 금지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들이 22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몰고 온 트랙터들이 22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행정법원 제3부(당시 재판장 박성규 판사)는 2017년 종로경찰서의 옥외집회·행진 금지 통고 처분을 취소했다. 법원은 “경찰서장은 집회·시위의 금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금지할 것이 아니라, 집회 또는 시위의 방법 등을 일부 제한하는 등 집회·시위와 공공의 안녕질서가 조화를 이룰 방법이 있는지 검토해 재량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재량권 범위 내 처분’이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재량은 행정청의 자유가 아니라 의무”라며 “재량에 담긴 의무 불이행은 처분의 위법 사유”라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집회 제한 통고와 집회 통제가 위법하다고 봤다. 최석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집회·시위 인권침해감시 변호단 변호사는 “남태령역 앞은 집시법상 ‘주요 도로’도 아니다. ‘제한 통고’였지만 사실상 트랙터 시위 자체를 금지한 통고”라고 말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트랙터가 한 차로에 이동한다고 차량 소통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는 것은 전날 서울 지하철 한강진역까지 트랙터가 운행한 것만 봐도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전농 시위대 앞뒤로 차벽을 설치한 점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청장이 2009년 경찰 버스로 서울광장을 둘러싸며 통행을 제지한 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명백한 불법·폭력 집회의 위험성이 있었다고 할 수 없고, 일반 시민 통행까지 제한돼 경찰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전날 시위 현장에 있었던 김은진 변호사는 “경찰은 시위대 앞뒤로 차벽을 세워서 일반 차량·시민이 지원한 난방 버스의 소통도 막았다”며 “이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시민을 보호한다’는 기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 변호사는 “집회 제한 통고에 따라서 시위대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고립돼서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경찰의 역할”이라며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담요를 뺏으려고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던 것을 고려하면 보호를 하지 않은 것을 너머서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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