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발호’(跳梁跋扈).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교수들이 뽑은 2024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12·3 비상계엄 선포 하루 전에 발표했으니, 그간의 조짐을 교수들이 간파했던 것이리라.

모든 사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통령 탄핵 이슈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올 한 해 우리 사회에는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2024년 마지막 <포토다큐> 지면은 경향신문 사진기자들이 기록한 ‘올해의 한 컷’들을 모았다.

환희

지난 8월31일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오상욱이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키자 구본길이 뛰어나와 얼싸안고 있다. 카메라를 쥔 손에 흥건히 고인 땀을 그제야 닦으며 안도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통쾌한 승리였다. 대한민국은 파리 올림픽에서 활·총·검을 앞세워 종합순위 8위의 깜짝 호성적을 내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성동훈 기자

지난 8월31일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오상욱이 마지막 공격을 성공시키자 구본길이 뛰어나와 얼싸안고 있다. 카메라를 쥔 손에 흥건히 고인 땀을 그제야 닦으며 안도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통쾌한 승리였다. 대한민국은 파리 올림픽에서 활·총·검을 앞세워 종합순위 8위의 깜짝 호성적을 내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성동훈 기자

애도

지난해 7월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채 상병의 묘비에 팔각모가 놓여 있다. 전역일을 하루 앞둔 9월24일이었다. 입대 동기들, 대대장, 시민들이 찾아와 그를 애도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입대하던 날 포항 시내 거리마다 온통 벚꽃이 만개해 너무나 예뻐서 몇번이나 아들과 환호성을 지르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해병) 1292기수 1012명 중 아들만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없어 목이 멘다”고 적었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7월 경북 예천에서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채 상병의 묘비에 팔각모가 놓여 있다. 전역일을 하루 앞둔 9월24일이었다. 입대 동기들, 대대장, 시민들이 찾아와 그를 애도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입대하던 날 포항 시내 거리마다 온통 벚꽃이 만개해 너무나 예뻐서 몇번이나 아들과 환호성을 지르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해병) 1292기수 1012명 중 아들만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없어 목이 멘다”고 적었다. 문재원 기자

답보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시작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지난 2월2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은 근심이 가득했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환자들만 남겨졌다. 의료 공백으로 생긴 수술 지연과 응급실 뺑뺑이는 환자와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병원 의료진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의사협회는 여전히 의대 증원 백지화를 외치고 있다. 탄핵 정국에 사태의 해결과 타협은 요원해 보인다. 한수빈 기자

정부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시작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지난 2월28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은 근심이 가득했다.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환자들만 남겨졌다. 의료 공백으로 생긴 수술 지연과 응급실 뺑뺑이는 환자와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병원 의료진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의사협회는 여전히 의대 증원 백지화를 외치고 있다. 탄핵 정국에 사태의 해결과 타협은 요원해 보인다. 한수빈 기자

정쟁

국민의힘은 지난 9월19일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채 해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 상정을 예고하자 본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여당 의원들이 모인 곳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야당의 단독처리를 비난하는 규탄대회를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정기국회조차 정쟁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시종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그가 ‘포퓰리즘 거부한다’는 손팻말 뒤에선 무슨 일인지 또 활짝 웃었다. 추 원내대표를 웃게 만든 이는 최근 차기 원내대표를 이어받은 권성동 의원이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은 지난 9월19일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채 해병 특검법과 지역화폐법’ 상정을 예고하자 본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여당 의원들이 모인 곳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야당의 단독처리를 비난하는 규탄대회를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정기국회조차 정쟁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시종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그가 ‘포퓰리즘 거부한다’는 손팻말 뒤에선 무슨 일인지 또 활짝 웃었다. 추 원내대표를 웃게 만든 이는 최근 차기 원내대표를 이어받은 권성동 의원이었다. 박민규 선임기자

회복

건국대학교의 마스코트인 거위 ‘건구스’가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왔다. 건구스는 지난 4월11일 한 6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9일 동안 모습을 감춘 터였다. 돌아온 건구스 한 쌍은 호수 안 인공섬 와우도에서 주로 지낸다. 건구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도 반겼다. 건구스가 ‘꺽꺽’ 울음을 토해내며 학생들을 향해 다가가자 학생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한 학생은 “폭행 사건 이후로 며칠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했다”며 “빨리 안정을 되찾아 원래 머물던 청심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건국대학교의 마스코트인 거위 ‘건구스’가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왔다. 건구스는 지난 4월11일 한 6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이후 9일 동안 모습을 감춘 터였다. 돌아온 건구스 한 쌍은 호수 안 인공섬 와우도에서 주로 지낸다. 건구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학생들도 반겼다. 건구스가 ‘꺽꺽’ 울음을 토해내며 학생들을 향해 다가가자 학생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한 학생은 “폭행 사건 이후로 며칠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했다”며 “빨리 안정을 되찾아 원래 머물던 청심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탄식

지난 7월1일은 야근이었다. 마지막 지면 마감시간에 가까운 오후 10시 편집국이 분주해졌다. ‘서울 시청역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6명 사망·8명 부상.’ 속보가 떴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겼다.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탓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메고 사고 현장까지 뛰었다. 땀으로 범벅된 몸은 현장을 보자 서늘해졌다. 가드레일은 종잇장처럼 휘어졌고, 사고 차량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뒤엉켜 현장을 수습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배터리 공장 화재로 인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요새 안타까운 사고가 너무 많다.” 함께 현장을 기록하던 동료기자의 말에 깊은 한숨만 흘러나왔다. 권도현 기자

지난 7월1일은 야근이었다. 마지막 지면 마감시간에 가까운 오후 10시 편집국이 분주해졌다. ‘서울 시청역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6명 사망·8명 부상.’ 속보가 떴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겼다.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탓에 카메라와 노트북을 메고 사고 현장까지 뛰었다. 땀으로 범벅된 몸은 현장을 보자 서늘해졌다. 가드레일은 종잇장처럼 휘어졌고, 사고 차량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뒤엉켜 현장을 수습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배터리 공장 화재로 인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요새 안타까운 사고가 너무 많다.” 함께 현장을 기록하던 동료기자의 말에 깊은 한숨만 흘러나왔다. 권도현 기자

기쁨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10월10일 한국을 뒤흔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큰 뉴스였고, 모두 기뻐할 수 있던 드문 뉴스였다. 사흘 후, 한강이 운영하던 서울 종로구의 독립서점 ‘책방오늘’ 앞을 찾은 이들은 들떠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책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창문을 통해 책방 안을 구경했다. 문 앞에는 축하편지와 꽃이 놓였다. 평소 주로 취재하는 ‘규탄’ ‘결의’ ‘촉구’하는 얼굴들 말고, 벅찬 얼굴들을 카메라에 담는 기분은 썩 근사했다. 정효진 기자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10월10일 한국을 뒤흔들었다. 예상하지 못한 큰 뉴스였고, 모두 기뻐할 수 있던 드문 뉴스였다. 사흘 후, 한강이 운영하던 서울 종로구의 독립서점 ‘책방오늘’ 앞을 찾은 이들은 들떠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책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창문을 통해 책방 안을 구경했다. 문 앞에는 축하편지와 꽃이 놓였다. 평소 주로 취재하는 ‘규탄’ ‘결의’ ‘촉구’하는 얼굴들 말고, 벅찬 얼굴들을 카메라에 담는 기분은 썩 근사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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