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통과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뭉개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한 대행은 24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한 치 기울어짐 없이 이뤄졌다고 국민 대다수가 납득해야 한다”면서 두 특검법의 공포를 미뤘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문제도 “여야가 타협안을 갖고 토론하고 협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합의가 없으면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권한대행 직분을 망각한 채 주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한 대행의 태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한 대행은 여야의 정치적 합의를 강조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는 위선이요 핑계에 불과하다. 내란에 외환 혐의까지 받는 대통령 윤석열이나, 그 비호와 탄핵 방해에만 혈안이 된 국민의힘과 내통하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윤석열의 오판으로 망가진 국가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한 입법부·사법부의 노력을 폄훼하고, 마치 자신이 직접 선거로 선출된 새 대통령인 것처럼 헌법을 곡해하고 선동하고 있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 대행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지당하다.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건 기본적으로 정치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헌재도 9인 재판관 체제 구성을 국회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이 한 대행 탄핵안을 추진함으로써 정국은 미증유의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주지하듯 한 대행은 윤석열 내란죄 공범 혐의 피의자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회의를 한 대행이 소집했다. 정족수 11명을 채우자마자 열린 국무회의는 ‘회의록’도 없이 5분 만에 끝났고, 곧바로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국무총리로서 한 대행은 윤석열의 불법 행동을 막을 책임이 있었지만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당시 윤석열로부터 무슨 지시를 받았는지 등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런 한 대행에게 주권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행정부’를 다시 바로세워 조기에 헌정 질서를 수립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한 대행은 주권자를 배신하고, 윤석열 수사·탄핵 절차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 탄핵 소추 의결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 총합으로서의 불신임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 대행은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 대행 체제의 근본”이라며 막무가내식으로 윤석열표 국정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민심의 탄핵 강풍을 한 대행도 비켜갈 수 없다.
내란 정국이 길어지면서 민생경제가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넘었다. 국가 신용도가 급락하고 내수·일자리 위축으로 자영업자·서민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 대행이 시민 편에서 발 벗고 나서도 부족할 판에 ‘윤석열 아바타’ 노릇을 하며 내란을 내전으로 획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 대행은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넘치는 탄핵 증거와 끓어오르는 민심을 한 대행은 직시하고 부응해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4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서울재팬클럽(SJC) 오찬 간담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