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윤석열 비상계엄 선포가 대기업에 주는 시사점](https://img.khan.co.kr/news/2024/12/26/l_2024122701000838200084851.jpg)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3시간이 안 된 153분 만에 끝났다. 12월3일 오후 10시28분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육성이 나왔고, 4일 오전 1시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황당한 계엄 선포였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모든 게 놀라운 이 사태의 경위와 대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20여일이 지난 지금 사태의 배경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다. “사태의 배경으로는 ‘과대망상에 의한 친위 쿠데타’로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 선거에 진 것은 부정선거 때문이다, 지지율이 낮은 것은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 때문이다. (중략) 그를 이런 망상의 세계로 이끈 것은 도대체 뭘까. (중략)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극우 유튜브다.”(이종규) 한마디로 사회적, 정치적 인지 능력이 무너진 권력자의 전횡이다. 그동안 수많은 지인과 정치인과 언론의 진언과 지적도 소용없었다. 반면에 사태가 153분 만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은 헌법상의 제동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헌법 제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황당했던 이번 사태는 절차에 따라 수습이 될 것이다. 질서 있는 수습을 확신하는 근거는 우리나라의 민주적 시민의식이다. 사태 이후 지속된 퇴진 및 탄핵 집회에 등장한 ‘다양한 깃발’이 이를 증명한다. 노동조합과 당명이 부각된 깃발은 존재감이 희미해진 반면, 시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는 2030 여성이다. “개개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연결되는 집단성보다 관계성이 부각되는 모습,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의 시위 문화, 어떤 우두머리가 있고 특정 목표를 하방으로 쫙 퍼지게 하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콘서트처럼 즐겁게, 강압적이지 않게, 스스로 만들어가는 집회”(곽금주)가 되고 있다.
‘오너의 전횡 리스크’ 떠올리게 해
그런데 이러한 초유의 사태를 맞아 걱정되는 건 대기업 집단이다. 정치가 광란을 부려도 사회가 지탱하는 건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계엄 사태가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시대가치와 동떨어진 ‘오너의 전횡’이 가져오는 리스크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기업은 이른바 ‘최대주주’ 자본주의를 맘껏 누리며 소수의 지분으로 크나큰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제도적 제어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등이 있다. 회사 내에도 정관, 이사회, 감사위원회, 준법감시인, ESG위원회가 있고 이를 견제하는 노동조합도 있다. 회사 밖에도 시민단체가 있고 언론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고 불안정 노동자와 그림자 노동자는 늘어나고 있다. 탄핵 집회의 ‘다양한 깃발’은 이러한 시대적 아픔의 표출이다.
기업이란 욕망 있는 인간이 탐욕 있는 자본을 다루는 곳이다. 욕망이 있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투자를 하고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기업은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고 소비자를 만족시켜 이윤을 창출한다. 동시에 제어되지 않은 자본의 탐욕은 사회 가치와 동떨어진 방식의 이윤 극대화로 이어진다. 욕망은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만 탐욕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기업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정치를 이용하고 일부 정치인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기업의 탐욕을 역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게 언론과 다양한 시민단체다. 그러나 이제 언론의 펜촉도 무뎌졌고 다양화된 세상도 그 다양함의 내용이 달라졌다. 이번 사태에 등장한 ‘다양한 깃발’은 개성의 다양이 아니라 지치고 핍박받는 삶의 다양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가치 지향을 입법과 행정에 녹여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요즘 정치는 오히려 기업이나 특정 집단 편에 서서 둘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이슈가 된 양곡관리법이 있다. 어려운 농민은 합당한 제도로 지원하되, 시장경제와 동떨어진 방식의 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계열사 이사회 ‘패싱’ 일방적 인사
기업 밖에서 정치가 문제라면 기업 내부에선 오너 회장의 시대가치 인식 부족과 전횡이 문제다. 최근 여러 대기업이 대표이사 인사를 단행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이 계열사 이사회를 패싱하고 일방적으로 계열사 대표이사를 발표했다.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시대가치를 인식하는 오너라면, ESG경영을 표방한 오너라면 이해관계자를 더 배려해야만 했다. 또한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있으면서 책임은 없이 거액의 보수만 챙기는 것도 문제다. 이 또한 불법은 아니다. 배임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탐욕을 추구하는 자본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가 야합한 결과다. 오너 회장의 독단은 계열사 임원인사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바로 낙하산 인사다. ESG경영의 기본은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독립적인 거버넌스가 존재하고 각각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임에도 오너 측근의 B급 인사를 계열사 임원으로 무수히 내려보낸다. 이러한 낙하산은 단순히 메기 한 마리가 아니다. 계열사 내부의 동기부여와 사기를 꺾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낙하산이다. 그 결과 계열사의 의사 결정 기준은 회사의 이익이 아닌 오너와 그 측근들의 이해관계가 되고, 계열사 직원들은 공정함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
이러한 전횡에 맞서 질서를 잡아야 할 힘있는 정규직 노동조합은 오직 임금 상승에만 관심이 있다. 가치사슬 내 다른 힘없는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 자기 것을 더 채우라고 요구하고, 이에 일부 낙하산 임원은 노동조합과 야합을 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한다. 그 노동조합의 상위단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창하면서도 자기 단체 내의 이러한 상반된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탐욕에 빠진 정치인은 이들을 든든한 우군으로 섬긴다.
민주화 시대엔 정치가 기업을 힘들게는 해도 망하게는 못한다. 망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정치가 아니라 고객의 외면으로 망하는 것일 테다. 고객은 시대가치와 동떨어져 탐욕을 부리는 기업을 외면할 것이다. 대체자가 크기 전에 시대가치를 인지하는 감수성을 높여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회장님의 결단이 희망이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