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라 사람들의 마음, 날씨처럼 뜨거웠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6) 다정함 넘쳤던 베트남 냐짱

일정 내내 세심했던 로컬가이드, 안전 신신당부한 버기카 기사, 음료 챙겨준 공항 직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베트남 냐짱(나트랑)에 도착한 건 새벽 2시였다. 다섯 시간을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기상해 호텔 로비에서 로컬가이드를 기다렸다. 11월 냐짱은 한창 우기였다. 아침 기온은 서늘했고 물기 먹은 공기가 묵직했다. 새벽부터 시끄럽던 오토바이 경적이 잠잠해졌다. 출근 시간이 지난 까닭이었다.

호텔 리셉션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략 방의 컨디션을 묻는 것 같았다.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자 로비에 있던 어느 한국인이 다가와 통역해주었다. 짐작대로 그녀는 내게 호텔에서 불편한 사항은 없었는지 질문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최고의 가격, 훌륭한 룸 컨디션이었다고 답했다. 조금도 과장되지 않은 진심이었다. 불과 1만5000원짜리 방이라고는 상상치 못할 깨끗하고 정돈된 시설이었다. 직원이 무척 기뻐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통역을 해준 한국인 남자는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와 내 앞에 정차했다. 오늘 나와 여행을 함께할 로컬가이드 ‘탄’이었다. 그녀는 한국어가 유창했다. 독학했다는데 속담이며 요즘 신조어까지 완벽히 구사했다. 내가 일정에 앞서 아침 식사를 하고 싶다 요청하자, 그녀는 내가 찾아온 식당 대신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식당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언니,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식당은 비싸고 진짜 베트남 맛이 아니에요. 내가 베트남 맛을 제대로 보여줄게요.”

나는 흔쾌히 탄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하고는 그녀의 팔을 잡고 길을 걸었다. 그녀가 데려가는 곳은 간판조차 없어 구글 맵에도 잘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낮은 의자는 불편하고 식탁은 먼지와 찌든 기름때로 끈적였지만 음식 맛은 최고였다. 탄은 내게 낯선 경험을 체험시켜주고 싶은지 생소한 향신채들을 만져보게 해주며 향을 음미해보라 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시내를 구경했다. 매연과 뒤섞여 두리안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이 도시에 깊숙이 밴 살아 있는 냐짱의 냄새였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현지인들 틈에서 베트남식 커피를 마셨다. 내가 탄에게 장애인 가이드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흔쾌히 투어를 맡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라이따이한’ 이야기를 꺼냈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에 사는 한국계 혼혈들을 일컫는다. 탄의 말로는 그들은 시골에서 살며 도시로는 잘 나오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했다. 말속에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느껴졌다.

탄이 내 장애와 라이따이한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베트남에서도 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냐고 물었다. 탄은 베트남에는 54개의 소수민족이 있지만 큰 분쟁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차별 없는 사회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는 결코 차별을 인지하지 못한다. 탄도 다수 중 하나며, 주류에 속해 있을 터였다.

다음 일정으로 시장을 둘러보고 소품 숍에 들러 기념품들을 만져봤다. 상인과 옥신각신 흥정해 가방을 하나 사기도 했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는지 도로에 오토바이 통행이 늘어났다. 우리는 신호등 없는 도로를 건넜다. 탄은 머뭇대지 말고 각자의 속도로 걸으면 위험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양보 없이 쌩쌩 달려와 내 옷깃을 스치듯 지나갔다. 처음에는 좀 긴장됐지만 도로를 반쯤 건넜을 때는 이곳만의 원칙을 지키면 충돌이 없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도로를 건너고 나서 탄이 무서웠냐고 물었다. 나는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그녀가 내게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20년간 안마사로 일했고 지금은 안마 일을 병행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언니는 꿈을 이루고 사네요.”

탄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달라진 것 같았다. 그녀가 내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원한다면 내 책을 줄 수 있다고 대답했고, 탄은 무척이나 감동했는지 내 손을 꽉 잡아왔다.

“언니, 세상을 많이 보고 다녀요. 그리고 언니가 본 세상을 글로 써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말해줘요. 베트남 어디든 내가 언니의 눈이 될 사람을 구해줄게요.”

나는 탄의 뜨거운 응원을 듣고 매연으로 가득 찬 이 도시가 정겨워졌다.

탄과 이틀간의 시내투어를 마치고 숙소를 리조트로 옮겼다. 온종일 수영하고 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고급 리조트는 비싼 만큼 서비스가 훌륭했다. 탄이 리셉션에 단단히 이르고 갔는지 직원들은 수시로 빌라에 들러 불편한 게 없는지 살펴주었다.

다음날 버기카를 타고 노천 온천에 들러 석양을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었다. 자본의 맛은 지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킨다.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휘몰아치는 파도 소리를 감상했다. 행복에 취해 있다 문득 직원들이 내 근처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만 빌라로 돌아가려 탕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득달같이 리조트 직원이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안내해주었다. 버기카 기사가 돌아가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가 나를 데려다주며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순순히 대답하자 그가 또 체크아웃 후 비행기 시간까지 뭘 할 건지, 누가 공항까지 데려다주는지 질문했다. 나는 그의 영어를 반도 알아듣지 못해 그저 걱정하지 말라고만 답했다. 이미 탄의 소개로 체크아웃 이후 공항까지 안내해줄 가이드를 구해놓았고 차량도 예약해둔 참이었다. 기사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귀찮았다.

돌아와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객실 문을 노크했다. 나가보니 아까의 버기카 기사였다. 그는 본인이 리조트 매니저와 친분이 있어서 레이트 체크아웃을 부탁해놨다고 말했다. 나는 대가 없는 친절은 없다고 생각해왔기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기 앱을 사용해 말을 전해왔다. 오후 6시까지는 얻어낼 수 없었지만 오후 3시까지는 무료로 레이트 체크아웃을 할 수 있게 양해를 구해놓았으니, 내일 천천히 준비해 체크아웃을 하라 말했다.

“나는 당신이 사기를 당할까봐 걱정됩니다. 택시가 필요하면 내게 이야기해줘요. 안심할 기사를 소개할게요.”

얼굴에 열이 올랐다. 선의를 의심부터 한 내 자신이 창피했다. 훈훈한 마음으로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탄이 나를 보호해줄 건강하고 힘센 가이드를 수배해놨다더니 공항까지 에스코트할 가이드는 튼튼한 팔을 가진 베트남 청년이었다. 리조트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공항으로 출발했다. 다만 내가 탑승할 비행기가 두 시간 연착되었다는 사실을 공항에 도착해서야 안내받았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공항은 이미 한국인들로 인산인해였고 항공사 카운터 앞에는 벌써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수하물 무게 때문에 빼놓았던 맥주와 음료를 마시며 시간 때울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직원이 다가오더니 항공사 카운터에서 먼저 티켓을 줄 테니 탑승구로 일찍 들어가 쉬고 있으라며 나를 배려해주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약간 아쉬운 것은 입도 대지 못한 맥주와 음료들이었다. 짐 검사 전에 들고 있던 액체를 모두 내려놓고 직원을 따라 탑승구로 들어갔다. 앞으로 네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당신 음료요(Your drink)” 하고는 내가 두고 온 음료들을 슬쩍 가져다주고 갔다.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장애인이기에 받은 배려들이었다. 이런 뜨거운 차별이라면 얼마든지 비주류로 남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조심해요(be careful)”와 사기를 걱정하는 베트남인들의 우려 섞인 말이었다. 그들의 선의가 내 옆을 지켜주었다. 고국에 도착하니 영하의 날씨가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어제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얇은 옷차림 때문에 몸은 꽁꽁 얼었지만 마음만은 여름 나라에서 데워진 열기로 후끈했다.

■조승리

[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여름 나라 사람들의 마음, 날씨처럼 뜨거웠다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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