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에 ‘책임 없는 사과’한 푸틴…관계 악재 되나

김서영 기자

‘러시아군의 격추’ 언급 없이 사과만

아제르,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문책 요구

카자흐스탄 악타우 인근에 25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가 추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자흐스탄 악타우 인근에 25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가 추락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 항공기 추락 사고에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격추’를 사고 원인으로 언급하지 않아 ‘책임 없는 사과’라는 비판이 일었으며, 이는 양국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통화하며 “러시아 영공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사과한다. 희생자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하며 부상자가 빨리 회복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 당시 그로즈니 등은 우크라이나 드론의 공격을 받던 중이었으며 러시아 방공 체계는 이 공격을 격퇴했다”며 “형사 사건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사과는 추락 사고 발생 4일 차에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것은 흔치 않다.

통화 이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실은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가 러시아 영공에 있는 동안 외부의 물리적·기술적 간섭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한 “철저한 조사와 관련자가 책임을 지도록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항공기 추락 원인으로 ‘러시아군의 격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책임 없는 사과’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자국 군대가 러시아 군용 헬기를 실수로 격추했을 때 러시아에 즉시 사과하고 보상까지 제공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진 적이 있어, 이번에 러시아의 유사한 대처를 기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우르 시리예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푸틴은) 사과 없는 사과(a non-apology apology)의 전형적인 사례다. 책임을 직접적으로 수용하지도 않았으며 보상을 제안하지도 않았고 책임자를 문책하겠다는 약속도 없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한 여성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28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항공기 추락 사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여성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28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항공기 추락 사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아제르바이잔 정치권에서는 러시아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지난 27일 라심 무사바요프 의원은 “현재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러시아가 이 상황에서 올바른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러시아의 늦고 불충분한 사과는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에서 분노를 촉발할 수 있으며, 두 국가를 향한 러시아의 영향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제르바이잔의 사과 압박과 러시아의 사과 지연은) 최근 몇 년 동안 멀어지면서도 실용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두 국가의 사이를 위협했다. 러시아는 캅카스 남부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5일 아제르바이잔 항공 J2-8243편 여객기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출발해 러시아 그로즈니로 향하던 중 항로를 이탈해 카스피해 건너 카자흐스탄 악타우에 추락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국적 승객 67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38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당국은 초기 발표에서 새 떼 충돌과 안개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추락 지점과 항로 이탈, 기체 손상 상태 등을 근거로 한 반박이 이어졌다.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지난 27일 항공기가 러시아 방공미사일 또는 그 파편에 의해 격추됐다는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등이 협력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 결과 러시아의 공격이 추락 원인으로 드러나면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과 관련된 두 번째 여객기 사고가 된다.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상공에서 러시아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돼 승객과 승무원 298명이 전원 사망했다.

러시아는 책임을 부인했으나 2022년 11월 네덜란드 법원은 러시아 정보요원 2명과 친러 성향 우크라이나 국적자 1명에게 항공기 격추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다만 피고인들이 러시아에 머문 상태로 재판을 받아 실제 수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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