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 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4월 11일,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윌휴 콤비(윌 애런슨·박천휴)는 지금 한국 창작 뮤지컬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임에 분명하다. 이들은 <번지점프를 하다>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일 테노레>로 경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조선 최초의 테너 윤이선의 삶을 무대로 옮겼다. 극 중 윤이선은 내성적인 모범생이자 의사이지만, 우연히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 예상 못한 삶의 경로를 걷는다. 엄혹한 시대상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윤이선과 주변 인물의 삶을 통해 꿈을 빼앗긴 청년들의 고통을 전한다. <영웅>이 사실상 독점해 왔던 ‘독립운동 뮤지컬’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했다. 핵심 넘버 ‘꿈의 무게’는 그 어느 브로드웨이 뮤지컬 주요 넘버와 비교해도 호소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내년 초 발표되는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최다 후보에 오른 상태다.
발레 <인어공주>의 한 장면. 왕자는 공주를 사랑하고, 인어공주는 왕자에게 집착한다.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인어공주>(5월 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부 마치고 아이 손을 끌고 퇴장한 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어린이날을 즈음해 공연이 올라갔기에 오해받을 만했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주제를 생각지도 못한 말로 요약했다.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상대가 나를 사랑할 책임은 없다.” 남성 무용수가 연기한 바다마녀가 인어공주의 나풀거리는 꼬리를 거칠게 벗겨내자, 살구색 타이즈를 입은 채 남겨진 인어공주는 바들바들 떤다. 이런 장면이 연상시키는 바는 분명하다. 육지로 올라와 어색한 발놀림으로 자신에게 별 마음이 없는 왕자 주위를 맴도는 인어공주는 위험한 스토커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반부 무대 위로 별이 쏟아지고 인어공주는 하늘로 떠오르지만, 누구도 이 아름다운 장면을 해피엔딩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튀튀 입은 발레리나들이 우아하게 춤추는 고전 발레를 넘어, 동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재미를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임윤찬 리사이틀 (6월 7일, 롯데콘서트홀)
레퍼토리 변경 소식에 의문이 들었다. “두 마디에 7시간을 연습했다”는 음반 <쇼팽: 에튀드> 수록곡을 연주하기로 했다가, 연주회를 두 달 남겨두고 갑자기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의 곡으로 변경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임윤찬이 무대에서 들려준 적도 없는 곡이었다. 공연을 듣고 나서 바꾼 이유를 알았다. 이날 연주는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전람회의 그림’이 연주되는 30여 분간, 임윤찬은 피아노에 빨려 들어간 듯한 집중력을 보였다. 2000여 명의 관객 역시 주술에라도 걸린 듯 무대를 바라봤다. 메모를 위해 수첩을 넘기기도 힘들었다. 임윤찬은 연주를 끝내자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듯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무대 뒤로 달려 나갔다. 임윤찬은 이날 연주로 격정적인 러시아 레퍼토리를 해석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보였다. 그와 완전히 반대되는 투명하고 이성적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임윤찬의 내년 주요 레퍼토리다. 임윤찬이 언젠가 현대음악도 들려줬으면 하는 건 개인적 바람이다.
오페라 <오텔로>의 종반부 한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전당 <오텔로>(8월 2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셰익스피어 비극 중에서도 <오셀로>는 그다지 현대적인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흔하고 자극적인 불륜 드라마처럼 여겨왔다.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 오페라 <오텔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속 오텔로는 매우 우울하고 피로하고 자격지심에 빠진 인물이다. 출세가도를 달리는 장군의 위풍당당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텔로>가 가정폭력 가해자 서사를 넘어, 인간의 취약함을 들추는 심리 드라마가 된 이유였다. ‘설경구급’의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 테너 이용훈도 놀라웠다. 질투와 광기에 휩싸여 벽을 치며 날뛰는 종반부 모습에 상대 소프라노도 겁에 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래 잘하는 오페라 가수가 연기까지 잘하면 얼마나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 수 있는지 증명했다.
이자람의 판소리 <노인과 바다>. 국립극단 제공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9월 13일.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헤밍웨이의 유명 소설을 판소리로 재창작했다. 소리꾼 이자람이 고수 박근영의 장단에 맞춰 망망대해에서 청새치 낚는 노인의 사투를 들려줬다. 별다른 무대 장치는 없다. 목소리와 북소리만으로 아이맥스 스크린 이상의 스펙터클이 펼쳐졌다.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대목에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상어떼에 청새치를 빼앗긴 뒤에도 자긍심을 유지한 채 휴식을 취하는 장면에선 안도의 미소가 지어진다. “이 양반은 옛날 쿠바 양반이라 간장과 와사비는 모를 것이다” 같은 대목은 판소리만의 해학이었다. 70여 년 전 미국 작가가 쿠바를 배경으로 쓴 소설을 판소리로 듣는데 아무런 이질감이 없었다. 이자람이 이 작품을 두고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헤밍웨이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자람의 판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