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한동일. 한수빈 기자
피아니스트 한동일씨가 별세했다. 향년 83세.
음악계에 따르면 한동일씨는 29일 세상을 떴다. 고인은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함흥 중앙교회에서 교회 찬양대를 지휘한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가까이 했다. 광복 이후 소련군이 38선 이북을 장악하자 고인의 가족은 모두 남한으로 이주했다. 팀파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아들 손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김성복 전 이화여대 교수, 이애내 숙명여대 음대 초대 학장 등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다. 고인은 전쟁 중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피아노 연습할 공간이 부족하던 시절, 고인은 미 제5공군사령부 강당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할 기회를 얻었다. 고인의 연습 모습을 본 한 군인이 무대를 주선했고, 1953년 10월 부대에서 연주한 뒤 새뮤얼 앤더슨 당시 제5공군사령관이 미국 유학을 주선했다. 임기를 마친 앤더슨과 함께 1954년 도미한 고인은 줄리아드 예비학교, 줄리아드 학사, 줄리아드 석사를 거쳤다. 카네기홀에서의 뉴욕필 협연, 에드 설리번 쇼 출연, 백악관 연주 등으로 이름을 알린 그를 두고 미국 미디어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온 신동”이라고 소개했다. 1965년엔 레너드 번스타인이 심사위원장이던 제24회 리벤트리트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의 국제콩쿠르 우승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고인은 음악 교육자로도 오랜 시간 활동했다. 인디애나대, 일리노이주립대, 보스턴대 등 미국 학교를 거쳐, 울산대 음대 석좌교수, 순천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생전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2004년 91세였던 아버지와 함께한 ‘도미 50주년 기념 공연’을 ‘인생 최고의 무대’로 꼽았다.
2019년 영구 귀국해 서울에서 홀로 거주해왔다. 노년에도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다. 고인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특별히 사랑하는 곡으로 꼽았다. 고인과 함께 제1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 참가했던 피아니스트 신수정씨(대한민국예술원 회장)는 “우리 시대의 아이돌 같은 음악가이자, 한국 피아노 역사의 거인”이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1월1일 차려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