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에서 대통령궁으로···미하일 카벨라슈빌리 신임 조지아 대통령

박은경 기자

친러 성향의 극우 정치인···조지아 민주주의 위기

부정선거 의혹에 시민들, ‘퇴장’ 붉은 카드 들어

미헤일 카벨라슈빌리(53) 신임 조지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헤일 카벨라슈빌리(53) 신임 조지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저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9일(현지시간) 취임한 미하일 카벨라슈빌리(53) 신임 조지아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과는 달리,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은 야당의 보이콧으로 빈자리가 눈에 띄었고, 의사당 밖에서는 전임 대통령 살로메 주라비슈빌리가 수천 명의 지지자와 함께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는 자신을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이라 주장하며 이번 취임식을 “희극”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 관저는 정당한 대통령이 있을 때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며 자신이 그 정당성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서겠다고 선언했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대통령궁 앞에서 신임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뒤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대통령궁 앞에서 신임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뒤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임자와 많은 시민의 비판 속에 취임한 카벨라슈빌리는 누구일까.

AP통신, CNN, 뉴욕타임스(NYT), 르몽드 등을 종합하면, 1990년대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로 활동한 카벨라슈빌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2016년 학력 미달 등을 이유로 조지아 축구연맹에서 지도자 자격을 박탈당한 후 정계에 입문했다. 같은 해 친러 성향인 집권당 ‘조지아의 꿈’에 입당한 후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치계 입문 후에는 친러·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서구적 가치가 조지아의 전통문화와 가족 제도를 파괴하며, 유럽연합(EU)이 조지아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서방 정보기관이 조지아를 이웃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몰아넣으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민자와 성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4일 치러진 대선에 단독 후보로 나선 카벨라슈빌리는 선거인단 300명 중 224표를 얻어 법정 필요 득표수(200표)를 훌쩍 넘겨 당선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조지아 역사상 처음으로 간선제로 치러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증폭됐다. 조지아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직선제를 유지해왔지만, 2018년 개헌을 통해 간선제로 전환했다. 이는 2012년 이후 의회를 장악한 조지아의 꿈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야당과 주라비슈빌리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선전·선동, 투표함 조작, 유권자 위협 및 매표 행위 등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조지아의 꿈을 창당한 은둔형 억만장자인 전 총리 비지나 이바니슈빌리는 사실상의 조지아 실권자로 꼽히는데 그가 배후에서 친러 정부의 구성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심도 증폭된다. 선거 이후 조지아 헌법에 명문화된 EU 가입이라는 국가적 목표 추진도 갑자기 백지화됐다. 이 때문에 조지아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었고,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선거 부정 의혹 해소와 EU 가입 재추진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친러 성향과 민주주의 후퇴를 강하게 비판하며, 조지아의 유럽 통합을 위한 즉각적 조치를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 400명 이상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의사당 밖에 모인 시민들이 전직 축구 선수인 미헤일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을 거부하는 의미로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조지아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의사당 밖에 모인 시민들이 전직 축구 선수인 미헤일 카벨라슈빌리 대통령을 거부하는 의미로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대통령 취임식 날에도 반대 집회를 연 시민들은 축구 선수 출신인 새 대통령을 겨냥해 퇴장을 요구하는 의미의 붉은색 카드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항의했다.

카벨라슈빌리의 취임은 조지아의 정국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구소련 국가 중 가장 민주적이고 친서방적인 나라로 여겨졌던 조지아가 이번 대선과 정치적 대치 상황으로 인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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