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정신건강을 돌보려는 유럽

유럽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3년 6월7일 채택한 정신건강을 위한 포괄적 접근 계획(A comprehensive approach to mental health)은 정신건강을 신체건강과 동일한 수준으로 간주하며 그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해당 계획을 통해 20개의 핵심 이니셔티브를 소개했고, 회원국의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12억3000만유로의 지원금도 약속했다. 핵심 이니셔티브는 정신건강 증진, 정신건강 문제 예방, 취약계층 지원, 국가 정신건강 정책 개혁, 낙인과 차별 해결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 행동들의 이행을 추적하기 위한 프레임워크가 2024년 10월10일 세계정신건강의날에 맞춰 업데이트 및 공개되었으며, 회원국의 이니셔티브 진행 상황에 대한 정기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 정신건강 관련 데이터는 이 포괄적 접근 계획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2023년 10월 유로 바로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인의 46%가 지난 1년 동안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정서적 또는 심리적 문제를 겪었으며, 그중 절반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개한 보고서(Health at a Glance 2022)에 의하면 유럽 청년들 중 거의 절반이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필요를 충족하지 못했으며, 코로나19 동안 청년들의 우울증 유병률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 유럽 근로조건 설문조사(European Working Conditions Surveys)에서도 유럽연합 노동자의 약 60%가 과도한 업무량, 고용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악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 회원국 간의 정신건강 인식과 태도 차이도 문제로 지적되어왔다. 북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대응해왔으나,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정신건강 치료를 위한 자원 부족과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문화적 낙인이 여전히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 한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기후변화, 지정학적 긴장, 정치적 극단주의, 디지털화 증가가 정신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정신건강을 둘러싼 문제가 복잡해진 만큼, 집행위원회는 이번 포괄적 접근 계획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함께 치료 및 지원 접근성을 보장하고, 회복 후 사회 재통합을 강화하며, 유럽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정신건강 문제 예방과 회복을 위한 관심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신건강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비상계엄, 탄핵 정국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등으로 인해 무거운 마음이 지속되는 연말, 연시다. 특히, 이번 여객기 사고를 보며 충격, 우울감, 무기력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 시기에 개인과 주변의 정신건강을 돌보고 챙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