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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는 문장 다음

입력 2025.01.01 20:57

수정 2025.01.0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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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계엄령이 내려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착륙하려던 여객기의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2024년 말은 참으로 잔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이기도 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 기억을 위한 에세이에서 김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죽었다고 끝난 문장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하려는 사람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오늘은 4월17일입니다’)

2014년 세월호에서 희생자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10년을 더 살았다. 시인은 ‘살았다’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왜일까. 수많은 생명이 떠나갔는데도 멀쩡히 살아있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닐까. ‘죽었다’는 문장의 주어인 ‘떠난 이’를 잊지 말자고 말해볼 수는 있지만, ‘살았다’는 문장의 주어인 ‘남겨진 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다 같이 애통한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글을 읽어주고,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고 말한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된 오늘만큼은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살았다’는 말 뒤에도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마지막까지 승객을 살리기 위해 애쓴 기장과 승무원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행정 담당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는 동시에,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음 아파하고, 잇단 재난에 우울하지는 않은지 서로에게 연락하고, 멈출 수 없는 일상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살아있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싶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차도하의 유고 시집 <미래의 손>(봄날의책, 2024)에도 그런 시가 있다. “복숭아를 좋아하는 죽은 친구를 둔 사람과/ 딸기 디저트를 좋아하는 죽은 친구를 둔 사람이/ 어느 날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어났던 일이란 이런 것이다. 두 사람이 마주침, 두 사람이 서로를 몰라봄, 두 사람이 서로를 지나감, 두 사람이 멀어짐. (…) 어떤 사람의 죽음이/ 오늘의 교통 상황에 숫자로 기록되는 동안/ 두 사람은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어떤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느낀다. (…) 이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마무리하고/ 남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기억하지 않을 만한 지나침’)

각자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이 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둥켜안고 우는 것도, 서로의 상처를 돌보는 것도 아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마주치고도 몰라보고 멀어질 뿐이다. 그러나 멀어진 후 각자의 집에서 애도를 마무리한다고 해도 결국 “남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내겐 가장 중요해 보인다. 시간이 흘러 복잡한 세상에서 믿음을 잃는다 해도, 매 순간 같은 강도로 죽음을 기억할 수는 없다 해도, 떠난 이가 좋아했던 복숭아와 딸기를 별 생각 없이 먹으면서, 죽지 않고 각자의 삶 살아가기. 이제는 그 뜻이 무엇이었냐고 물을 수 없게 된 시인의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두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울컥하게 만들었던 나의 ‘올해의 시집’에 실린 이 시를, 나는 그렇게 읽고 싶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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