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윤석열 내란의 뿌리

권력은 칼과 똑같아서 사용하는 자의 것이다. 동시에 사용할수록 커진다. 적폐청산을 통해 최고 권력으로 부상한 검찰이 검찰개혁 국면에서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사진은 2020년 1월10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권 수사를 하다 좌천된 참모진과 마지막 오찬을 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위)과 그에 앞선 2019년 10월12일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 내내 영향 끼쳤던
적폐청산 성공과 검찰개혁 실패
진보와 윤석열 사단 ‘기괴한 결합’
보수 정당이 권력에 귀환하고
무능한 윤석열의 집권으로 이어져
견제 안 받는 검찰 권력은 비대화
정치·제도 ‘공공적 시스템’ 붕괴
민주주의 학습 안 된 대통령은
공사 구분 없이 군대까지 사사화
군·검찰을 사적 조직처럼 이용
민주공화국 원리인 치안과 안보
나라 안팎 평화 유지에 필수인데
최고 권력자에 무참히 훼손당해
국가 최고 공직자가 일으킨 초유의 윤석열 내란은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에 깊은 분석과 무거운 과제를 던져준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의 직접적 산물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를 등장시킨 검찰개혁 실패와 진영대결의 연장이다. 셋째,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화 이후 누적된 한국정치 구조와 제도의 최악의 부정적 효과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내란은 국가를 위한 공공적·정치적·정책적 준비가 안 된 한 개인의 철저한 실패요, 파탄적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정도의 세계적 규모를 갖는 국가의 운영은 정치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고도로 훈련된 인물조차 실로 매우 버거운 과제다.
본시 정치는 ‘나라의 모든 일’이라는 의미다. ‘서로 다른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균형’, 즉 바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때 균형이라는 말은 부분들의 합이라는 뜻이 아니라 부분들이 타협하고 어우러져 만든 또 다른 전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정치는, 수리와 합리의 영역인 생산·경제·과학·기술과는 달리, 자연·전쟁·예술과 함께 분별과 통합기예의 영역으로 불린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민의 수렴과 국민·국가 통합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정치에 참여하였고 갑자기 승리하였고 갑자기 집권하였다. 그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0선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 번도 공적 선출직을 경험하지 않은 채 국가 최고 공직에 선출된, 민주화 이후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권력의지는 차고 넘쳤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자 보수진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시켰으면서도, 강고한 진영계선을 넘어 보수정당 후보로 출마를 강행한 것을 보면 그의 권력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평생을 하나의 직업인 검사로 일관하였다. 인류의 오랜 지혜처럼 정치와 법률은 상보적인 동시에 매우 상충적이다. 특히 검사는 일도양단의 유죄와 무죄, 법률가와 범죄자,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과 흑백논리에 가장 익숙한 직군이다. 또 흑백논리가 없다면 능력 발휘나 성공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불행하게도 상대를 타도해야 하는 전쟁 및 폭력 조직과 동일한 논리를 갖는 이유이다. 하여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 조정과 합의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즉 검찰주의와 민주주의는 상극적이다. 0선에다 평생 검사 직분에 종사하다보니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전무한 상태에서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집권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자신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국민 및 단체들과 항상 충돌하고 대립한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기에는 이념 및 진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광복회, 의료계, 과학기술계, 해병대 전우회도 포함된다. 대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이 단체들과 왜 그렇게 심하게 다투는지, 나만 옳다는 유아독존과 절대 오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과 통치방식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여당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권 이후 국회 및 야당과 가장 적게 대화한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그의 집권 이후 지금까지 여당 대표는 무려 13명에 달했다. 임기 절반 동안 집권당 대표 숫자로는 건국 이래 단연 최다 기록이다. 그나마 선출된 정상적인 당대표는 3인에 불과하고 나머지 10인은 모두 한시적 권한대행이거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처럼 수직적으로 부하나 죄인 다루듯 여당을 운영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정당 정치의 완전 부재였다.
더 언급되어야 할 점은 그의 지도자로서 개인적 언행과 태도의 차원이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정책이나 노선에 앞서 이 부분에서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 공직자다운 공적 품새와 품격을 말한다. 고래로 동서에서 정치의 본령은 동일하였다. 정치는 지도자의 덕성(德性, 능력)에 달려 있고, 덕성이 마음과 사람(人材)을 모으며, 사람의 결집은 또 그의 몸 닦기(修身)에 달려 있다. 그럴 때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공적 직책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수신, 즉 국민을 대면하는 언행과 태도, 스타일과 자세, 공사 구분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의문이다. 황당하게도 최고 공직자가 사용한 모국어의 정확한 어휘가 - 의미가 아니라 -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국가의 공적 기구와 매체와 국민 여론이 온통 달라붙어 논쟁을 했어야 하니 다른 영역의 공사 구분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공적 공간에서 언급하기조차 싫지만 주술과 이성의 영역을 보자.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근대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과거의 주술과 미신과 무속(인)을 국가의 공적 결정과 영역, 논의와 언급 범주 자체로부터 단연코 절연시키는 것이었다. 근대 이행의 최소 필수 요소였다. 대통령 선거 방송 토론을 포함해 그러한 최소한의 근본 원칙마저 수시로 의심받고 논쟁적이었으니 공적 영역의 공사 구분은 말할 나위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21세기 문명국가 대한민국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결정을 통해 드러난 공사 붕괴의 대표적인 사안은 김건희 여사 문제였다. 선출되지 않은 사인의 과도한 국정개입 자체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그러한 논란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방식도 지극히 사적이었다. 과거에 더 사소한 이유로 자식들을 처벌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엄정한 공사 구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사실 이는 대통령 탄핵의 한 요인을 제공한 최순실 사태보다도 엄중하였다. 공적 규범과 법치의식이 붕괴되다보니 근대 민주공화국과 법치국가의 근본 중의 근본 원리, 즉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Nemo Judex in Causa Sua)는 원칙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과 가족이 직접 연루된 김건희 여사와 채 상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공화국과 법치의 최소 원칙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그러나 내란과 탄핵소추에 이르도록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의회와 국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대통령의 잘못된 의지와 선택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최악의 윤석열 내란 사태에 직면하여 윤석열 성공이 먼저였다는 객관적인 현실을 엄격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 집권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첫째는 적폐청산의 성공 때문이었고 둘째는 검찰개혁의 실패 때문이었다. 둘 모두 진보진영과 운동권의 숙망이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었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제일 국정과제였다. 이를 계기로 검찰은 기구와 역할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의 최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분노(resentment)와 분노의 결합이자 연대였다. 즉 적폐 보수에 대한 진보진영 및 운동권의 분노와, 보수 정부에서 밀려났던 윤석열 사단의 분노가 만나서 일으킨 분노지수와 청산주의의 증폭 효과는 문재인 정부 전반을 지배하였다. 전반기는 동조로, 후반기는 충돌로.
적폐청산을 향한 운동권(運動圈) 논리와 적폐청산의 실제 칼을 쥐고 있던 검찰권(檢察權) 행사가 만난, 기괴한 이중 분노와 이중 정의감의 폭발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합을, 검찰개혁을 위한 ‘환상적 조합’이라고 언명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 노상 검찰개혁을 운위하던 진보세력이, 광장 및 의회와의 탄핵연대의 유지가 아니라, 반대로 탄핵연대의 해체를 감수하더라도 검찰과 굳게 손을 잡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교조적 과거청산과 흑백논리의 당연한 접합이자 귀결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수정당은 권력에 귀환하였고, 그것도 자신들과 함께 보수청산에 나섰던 검사 출신이 집권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광장의 열기를 통한 보수탄핵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집권과 검찰의 집권을 동시에 이루어 주어, 적폐청산도 검찰개혁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보수적폐 청산 이후에 검찰적폐를 청산한다? 동서의 권력 역사에서 자주 보았듯 이는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특히 민의를 통해 주기적으로 권력을 교체하는 선거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하였다. 물론 반대였다면 성공하였다. 즉 탄핵에 찬성한 국민 80%와 의회 80%를 반영하여, 최소한 보수당 62명, 중도당 38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탄핵연대를 잇는 탄핵연정·개혁연정을 구축하여, 의회와 정부에 적폐과제를 추출하고 극복하는 합동기구를 만들었다면 검찰개혁은 성공하고도 남았다.
권력은 결코 추상적 조직과 제도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실질적 행사의 산물이며 결과다. 칼에는 눈이 없듯 권력에도 눈이 없다. 눈은 칼을 쥔 사람이 갖고 있다. 권력은 칼과 똑같아서 사용하는 자의 것이다. 동시에 사용할수록 커진다. 적폐청산을 통해 최고 권력으로 부상한 검찰이 검찰개혁 국면에서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적폐청산 국면이 검찰개혁 국면으로 전이하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그 사단은 문재인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였고, 이 저항은 국민들에게 이들을 마치 진영을 넘는 상식과 공정의 표상처럼 밀어올렸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 정치의 뚜렷한 구조적 특징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강고한 진영 대결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의 반복적인 한계였다. 진영 대결은 - 진영이라는 말 자체의 뜻처럼 - 자기쪽 눈에는 악(惡)인 상대를 제압할 수만 있다면, 출신과 도덕과 과거 경력을 묻지 않는다. 중국·그리스·로마·한국·프랑스·일본을 포함해 동서의 권력투쟁에서 누천년 지속된 이른바 출노입주(出奴入主)와 입주출노(入主出奴)의 권력 현상이다. 원한 관계인 지금의 적을 제거해줄 수 있다면 원주인의 노예를 빼내어 자기 쪽의 새 주인으로 세워주는 것이다. 역사에는 이러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비록 보수 대통령 둘을 구속시키고 보수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현재의 진보를 제압하고 청산해줄 수 있다면, 진보정부 출신 검찰 수장처럼 좋은 최고의 출노의 재원은 없었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정당은 스스로 대통령 후보를 발굴하고 배출한 적이 없었다. 모두 밖으로부터의 영입이었다. 그들은 전부 야당(김영삼), 법조계(이회창), 기업(이명박), 2세(박근혜) 출신이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검찰 출신일 뿐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인간은 말을 갈아탄 현재의 소속에 더 강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의 자신과 자기 진영에 대한 배반과 배신은 훨씬 더 격렬하고 잔인하다. 깊은 고전들이 보여주듯 종교와 이념, 인간관계, 정치와 국가를 넘어 이 배반성은 진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과거 선례들처럼 퇴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쪽에도 정치적 발을 딛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두 개의 공공 시스템이 작동해왔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공식적 개인 시스템과, 대통령 밖의 공공적 국가 시스템이었다. 대통령제의 장점이자 한계다. 전자는 5년 동안 국가 정점을 장악하여 후자를 진두지휘하며 변화를 주도하려 한다. 후자는 그것과 같이 가거나, 또는 그에 맞선다. 전자와 후자가 서로 긴장되게 조응할 때는 국가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나, 둘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계속 충돌할 때는 국가가 한쪽으로 너무 쏠리거나 휘청댄다.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는 전자에 근접하였다면 이명박부터 윤석열까지는 계속 충돌하는 후자에 접근한다.
특히 윤석열은 후자의 범형에 가깝다. 윤석열 내란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가 공공성의 중심 근간인 군대와 경찰마저 사사화하고 말았다. 검찰 내에 사적 윤석열 사단을 거느리듯 최고 국가 공조직인 군과 경찰을 사사화하여 내란에 동원하였던 것이다. 최악의 이중 사사화가 아닐 수 없다. 전두환 하나회 이후 이토록 군을 특정 인맥과 출신을 고리로 사사화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윤석열 사단을 통해 검찰조직 내에 사적 인맥을 구축하여 공공성을 파괴한 데 이어, 이번 내란은 군의 정치 중립을 넘어 국가 안보와 전체 공공성의 막대한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선현들이 안보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 동시에 정치로부터 가장 멀 때 가장 확고하다고 언명한 까닭이다.
결국 대통령제 리스크와 대통령 개인 리스크가 만난 최악의 산물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였다. 만약 내부의 내란사태가 조기에 진압되지 않고 악화되었을 때 휴전선 너머의 군사적 움직임으로 인해 실제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국제관계, 국민 심리, 대외신인도, 경제와 무역, 국가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이번 내란의 잠재적·실질적인 반국가적 파괴성과 위험성은 이리도 큰 것이었다. 그만큼 국가 전체로는 대통령 개인이 들어왔다 나간 자리가 너무도 크고 깊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 개인에 따른 이 위험과 편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우리 시대의 책임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무지와 무능, 무법과 무도가 저지른 폭거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가 입은 내상과 상처는 앞으로 참으로 길고 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내란이라는 최악으로 치달은 인물과 제도, 표피와 근본, 표출과 근원을 동시에 혁파하는 일대 장정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다음 세대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우리들의 이 참담한 공동 실패를 물려주지 않기 위한 우리 세대 전체의 공통 임무이자 소명이 아닐 수 없다.
■필자 박명림
![[광복 80년 새 나라, 새 헌법, 새 미래]검찰개혁 실패·적폐청산 합작품 ‘윤석열 집권’…‘민주주의 탑’ 흔들다](https://img.khan.co.kr/news/2025/01/01/l_2025010201000077200003575.jpg)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과 한국전쟁(박사) 연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민주주의와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