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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양당 극단적 대결정치 극복 위해 선거제 개편해야③

탁지영 기자
선관위가 게시 불가 잠정조치를 내린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 현수막 모형 사진.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선관위가 게시 불가 잠정조치를 내린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 현수막 모형 사진.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그래도! 이재명은 안됩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뒤 국민의힘이 부산 지역에 내건 현수막 내용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8일 윤 대통령 탄핵 반대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년 뒤에는 다 ‘윤상현 의리 있어’, ‘좋다’ (하면서) 그 다음에 무소속 나가도 다 찍어주더라”고 말했다.

두 장면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기반한 거대양당의 대결정치가 정당과 정치인의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대통령이 야당을 타협과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제압해야 할 적으로 왜곡 인식해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국헌 문란 사건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대통령의 내란을 감싸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재명은 안됩니다’는 문구는 위헌적 내란 사태를 여야 간 대결 이슈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내란이든 뭐든 이번에 굴복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고 주장한다. 내란 심판을 정치화해 반헌법적 쿠데타라는 본질을 흐리고, 윤 대통령 탄핵소추로 분산된 국민의힘 지지층을 반이재명 깃발 아래로 결집시키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핵심 지지층인 부산에 현수막을 내건 데서도 의도가 엿보인다.

또 윤 의원 발언은 승자독식 선거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윤 의원 지역구는 인천 동구미추홀구을로 보수세가 뚜렷한 지역이다. 국민의힘은 영남, 민주당은 호남처럼 유권자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지역의 정치인은 어떤 정치적 행동을 보이든 정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영남 지역 의원이 압도적 다수인 국민의힘이 최근 탄핵 이슈에서 중도층 표심을 의식하지 않고 보수층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거대 양당의 극단적 대결 정치는 여소야대인 윤석열 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졌다.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선 합의 처리 대신 야당 단독 처리가 빈번해지며 곳곳에서 파행이 빚어졌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공격수 성향을 띄는 의원들을 법제사법위원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에 배정하며 상임위를 정쟁으로 얼룩지게 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기보다 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기 바빴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대결 정치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원인을 민주당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했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감싸고, 탄핵 사태마저 야당의 일방독주 때문이라고 역공하는 사이 국민의힘 지지율은 리얼미터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 25.7%(12월2주) → 29.7%(12월3주) → 30.6%(12월4주)로 올랐다. 윤 의원은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태극기 부대’ 집회에 참석해 윤 대통령 탄핵을 사과하며 큰절을 했다. 비상계엄 사태를 사과하고 신속한 탄핵으로 헌정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 ‘아스팔트 우파’에 기대 살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정당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진영 대결을 부추기고 이는 유튜버들을 통해 재생산된다. 극단적 대결 정치가 광장마저 쪼개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제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양당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대결만 한다”며 “이걸 바꾸는 건 복잡한 개헌이 아니라 선거법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진영싸움과 정치 양극화를 막으려면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권에서도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대결정치 종식을 위한 “포용적 정치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어떤 형태로든 의회 내에 반영돼야 하는데 지금처럼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자들은 적대적 거대 양당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란 위헌적 선택과 이후 여권의 비상식적 대응 배경에는 모두 극단적 대결정치가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탄핵 이후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선거제도를 통해 다당제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의회가 살아나려면 지금 처럼 영남 정당, 호남 정당 해서 두개 정당이 싸우고 있는 구도로는 불가능하다”면서 “국민의힘이 저렇게 국민 대다수가 이탈해도 버티고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도 언젠가는 영남 중심으로 지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양당 구도를 무너뜨려야 협치가 가능하다. 국회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당 숫자를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계엄 사태에서 돋보였던 행위자가 국회”라며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고, 가급적 국회의원 수도 늘리는 방향으로의 전향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거제 개혁뿐 아니라 정당 내부의 민주화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 양당 모두 리더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정당 외곽에서 강성 팬덤과 유튜브가 결합하면서 강경파 주장만 득세한다. 리더를 비판하는 정치인은 지지층에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거대 양당 독점 구조, 권위주의적 리더, 계파 정치, 강성 지지층 및 팬덤, 유튜브가 대결 정치의 각 축이 되어 상승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례대표성을 높여서 군소 정당들이 의회에 진입하게 하는 것보다 정당 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당내에서 다양한 집단들이 다면적인 차원에서 경쟁을 하게 되면 정당 간 대결 구도가 1차원적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제멋대로 당대표를 뽑으려 하고, 민주당도 총선 공천부터 대표가 권위주의적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조폭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 분산을 어떻게 할지, 공존의 정치는 어떻게 보장할지,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유튜브 환경은 어떻게 할지 등 총체적인 구조개혁을 논해야 하는데 진영 대결의 정치에선 탄핵이라는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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