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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지독한 의심”을 거쳐 나온다

입력 2025.01.03 08:30

프랑스 시인 자코테의 시적 산문

시어가 탄생하는 여정 본질 탐구

“시의 원천은 섬광 속에서, 때론

천천히 배어드는 과정을 통해…”

20세기 프랑스시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프 자코테의 산문집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이 출간됐다. 난다 제공

20세기 프랑스시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프 자코테의 산문집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이 출간됐다. 난다 제공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필리프 자코테 지음 |류재화 옮김 |난다 |176쪽| 1만5000원

“시는 이렇게 뭐라도 포착하려고,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 온다. 이건 이야기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다. 시간을, 조금 더 긴 시간을 요하는 성찰도 아니다. 다만 여러 감각들의 동시 발생, 아니면 적어도 감각의 약간 혼란스러운 집중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그 맛을 고갈시킬 뿐이다.”

20세기 프랑스시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프 자코테(1925~2021)의 산문집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자코테는 자연과의 관계를 주요 주제로 삼으며, 이를 통해 시적 사유를 심화시켜왔다. 그의 시는 국내에서 아직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도 자연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성격의 시적 산문들로 구성돼 있다. 산문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섬세하고 절제된 언어와 독특한 리듬으로 산문시로도 읽힐 만큼 시적 울림을 전한다.

그의 글은 시적 언어의 본질과 시어가 탄생하는 비밀스러운 여정을 탐구한다. 시인에게 있어 시란 대상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완벽히 붙잡으려는 시도이며, 비록 그것이 실현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포기할 수 없는 소망이다. 시인은 자연 앞에서 “나는 보자마자, 아니 보기도 전에, 풍경들이 달아나면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끈질기게 대상을 표현할 가장 정확한 언어들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대상을 깎아내고 왜곡할 수밖에 없는 언어라는 매개의 한계를 끊임없이 경계한다.

강가의 갈대밭 아래 하얀 거품을 시로 형상화하는 과정을 그린 산문 ‘못, 갈대, 거품’은 시 창작 과정이 단순히 순간적인 영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한 사유와 언어에 대한 논리적 탐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자코테는 대상을 관찰하며 즉각 떠오른 첫 이미지들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처음 제시되는 상들이 가장 단순하고,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외려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 그러니까 기왕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신 머릿속을 떠다니며 바로 쓸 수 있는 것들”이라고 지적한다.

또 시적 암시가 지나치게 부각되어 논리적 사고로만 해석될 경우 사물의 본질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고도 전한다. 시인은 암시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텍스트 안에 숨겨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소 숨겨져 있다는 조건 하에서만 암시는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성을 건드려 받아들이거나 반박하게 만드는 형식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내가 유일한 실재라고 생각하는 세계로부터 나와서, 한 번 들어간 이상 훼손되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뇌의 미로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난다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대상을 정확히 언어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번번이 부딪히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대상의 본질과 시적 경험의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 시를 쓴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말을 수정하거나 번복하고 심지어 침묵하면서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지는 못해도 근접해나간다. “그래서 또, 가능하면 더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도 느낀다. 혼돈, 일관, 완결, 이들이 다 유지될 필요가 있다.” 또는 이 지난한 과정 끝에 자연의 본래 풍경들로 돌아와 기어이 어떤 본질을 포착해내기도 한다. “나는 코스모스(cosmos)란 단어를 생각한다…시의 원천은 바로 섬광 속에서, 때론 천천히 배어드는 과정을 통해 이 세 가지 의미가 동시에 발생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 저열한 것만큼이나 틀림없이 존재하는(슬프게도 저열한 것이 더 가시적이고 더 격렬하지만) 아름다움, 그 정연한 세계가 솟구친다. 지독한 의심을 거쳐, 결국은 시인들이 다시 돌아오고 마는 이 특이한 미끼, 함정.”

시는 때로 독자들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기묘한 울림이다.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은 바로 이러한 시적 경험을 탐구하며, 우리가 평소 지나치는 일상과 자연 속에서 숨겨진 감각과 의미를 새롭게 드러낸다. 시인이 풍경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대상을 관찰하고 그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간들은 일상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독자는 시인의 사유를 읽어내려가면서 일상과 자연 속에서 숨겨진 감각과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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