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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에서 예술가·기업인으로···다양해진 ‘독립운동 뮤지컬’

입력 2025.01.05 14:36

수정 2025.01.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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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안중근의 비장한 ‘영웅’에서

테너 이인선의 슬픈 ‘일 테노레’와

기업인 유일한의 경쾌한 ‘스윙 데이즈’까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독립 정신 추구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은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한다.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일 테노레>의 한 장면.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은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한다.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영웅>의 종반부 ‘장부가’ 장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결의를 다지는 안중근의 면모가 드러난 장면이다. 에이콤 제공

뮤지컬 <영웅>의 종반부 ‘장부가’ 장면.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결의를 다지는 안중근의 면모가 드러난 장면이다. 에이콤 제공

안중근(1879~1910)은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후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군인 신분으로 적국의 장수를 처단했다”고 주장했다. 이 입장은 재판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됐다. 뮤지컬 <영웅>은 이토가 죽은 지 정확히 100년 된 날 초연했다. <영웅>은 안중근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손가락을 잘라 독립운동을 결의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이토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 사형당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웅>은 지난해 15주년 기념으로 10번째 시즌을 공연할 정도로 오랜 시간 관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사실상 <영웅>이 독점해온 ‘독립운동 뮤지컬’의 흐름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2018년 낭독회를 시작으로 2023년 12월 초연 막을 올려 연장 공연까지 한 뮤지컬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를 산 조선 최초의 테너 이인선(1907~1960)의 삶을 옮긴 작품이다. ‘일 테노레’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란 뜻이다. 내성적인 의대생 윤이선(이인선을 모티브로 한 극중 인물)은 우연히 오페라에 매혹돼 조선 최초의 오페라 공연을 준비한다. 윤이선은 안중근 같은 투사가 아니며 초반부엔 식민지의 현실에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윤이선 역시 처참한 현실에 영향받고 연루된다. 독립사상을 연극으로 전하려는 문학회 리더 서진연,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건축학도 이수한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윤이선에게 영향을 준다.

<일 테노레>는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영웅>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한다. <영웅>은 안중근의 재판 장면을 담은 ‘누가 죄인인가’에서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등을 대며 이토 사살과 조선 독립을 정당화하지만, <일 테노레>는 일제가 청년의 일상과 꿈을 앗아갔기에 잘못이라는 점을 주장한다. 윌 애런슨과 함께 <일 테노레> 대본을 쓰고 작사한 박천휴는 제작사 오디컴퍼니를 통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소수의 영웅이 아닌 이상, 엉망진창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모든 개인이 좌절한 희생자로만 기억되는 건 슬픈 일”이라며 “그들 모두에겐 지금 우리처럼 아주 사적이면서도 눈부신 개인의 꿈, 희망, 노력이 있었다. 그런 인물을 무대 위에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스윙 데이즈__압호명 A>에서 기업인 유일형은 경쾌한 스파이 스릴러의 주인공처럼 묘사됐다. 컴퍼니 연작 제공

뮤지컬 <스윙 데이즈__압호명 A>에서 기업인 유일형은 경쾌한 스파이 스릴러의 주인공처럼 묘사됐다. 컴퍼니 연작 제공

2월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초연하는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유한양행 설립자인 기업인 유일한(1895~1971)의 삶에 바탕을 뒀다. 그가 미국 내 한인사회와 협력해 독립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 전략사무국(OSS)과 냅코(NAPKO)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사실에 영감받은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출신 이민자들 중 고도로 훈련된 요원을 선발해 한국으로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극중 유일형은 성공한 사업가로 일제와 적당히 타협하는 동시에 은밀히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다. 유일형이 중국 상하이에서 주최한 호화로운 파티에 독립운동가 베로니카가 쫓겨 들어온다. 유일형은 베로니카를 숨겨주지만, 베로니카는 독립운동에 대한 유일형의 미적지근한 태도를 거세게 비판한다. 베로니카가 일본 군인에게 적발돼 죽자 유일형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유일형은 여전히 일제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조선 독립을 후원한다.

안중근이 비장하고, 윤이선이 서글펐다면, 유일형은 좀 더 경쾌하고 여유 있다. 초반부 유일형의 액션 연기나 1940년대풍의 스윙 재즈 음악은 초창기 007 시리즈 같은 스파이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조선총독부 총독 곤도가 더욱 많은 상납금을 요구하자, 유일형은 이에 응하면서도 오히려 “곤도를 돈의 노예로 삼았다”고 역발상한다. 유일형은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지만, 어떻게든 조선 독립이라는 결과를 내려는 실용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일형은 조선인이든 일본의 가미카제 소년병이든, 생명에 대한 연민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실미도>의 김희재 작가가 처음으로 뮤지컬 대본을 쓰고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김 작가는 지난해 11월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너무 교과서적인 대상이라 창작자에겐 어려웠다. 그래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 주인공)처럼 자신만만하고 베팅을 좋아하는 인물로 변주했다”고 말했다. 첫 넘버의 제목 역시 ‘미스터 갬블러’다. 김태형 연출은 “유일형의 이야기는 쿨하고 멋지면서도, 진심을 다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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