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로 추가된
코리아 리스크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선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 걸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그 너머에도
평안함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 강화 위해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
계속 캐묻고 실천해야 한다
피크 코리아 역전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는
이제 민주주의 강화가 됐다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은 드높았다. 한강씨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오징어 게임 2>의 공개가 임박하면서 다시 한번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한국 경제의 미래를 두고 이미 내리막으로 들어섰다는 ‘피크 코리아’ 담론이 한쪽에서는 계속 제기되었지만, 이와 같은 문화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낙관론이 그런 비관적 담론들을 덮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12월 초두에 시작된 이 ‘불만의 겨울’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통령이라는 자 스스로가 외환과 내란을 일으키는 수괴 노릇을 하는 꼴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행정부와 국회의 3분의 1을 장악한 자들이 노골적으로 헌정과 법치 질서 자체를 조롱하는 황당무계한 행태를 보이면서 내란의 장기화가 벌어지고, 아무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은 처절하게 짓밟혔고 길고 어두운 불확실성의 안개 속으로 나라 전체가 들어서고 있다.
원래 ‘피크 코리아’ 담론은 경제 분야에 국한된 것이었다. 2010년대 들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한국이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었다. 세계 경제의 환경 변화로 미·중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전까지 미·중 사이의 무역 구조에서 혜택을 보았던 한국 경제의 산업 구조가 따라서 위기를 맞게 되었고, 여기에 출생률이 저하하면서 인구 감소가 예측되고 또 큰 규모의 가계부채까지 더하여 내수 경제의 장기적 불황까지 겹칠 것이라는 게 대략의 줄거리였다.
이렇게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객관적·물질적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그대로 침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또 않을 수 있다는 낙관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문화적·정신적 힘 등 주관적·무형적 요인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첫째, 대한민국은 교육적·문화적 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 힘들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과 지식 생산과 유통의 구조를 개혁한다면 총요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혁신적 성장 체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은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발전의 빛나는 성과를 보유한 나라이며 이에 기반한 국민적 통합이 분명한 나라이므로 경제적 체질 전환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적·구조적 변화도 이루어 나갈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은 ‘피크 코리아’ 담론에 맞설 수 있는 근거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담론을 더욱더 강화시켜주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인구학적 변화만큼이나,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만큼이나, 산업 구조의 한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만드는 최악의 요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치솟는 환율은 과연 언제쯤 되어야 1200원대로 되돌아 올 수 있을까? 탄핵과 체포 등 내란 세력들을 청산하려는 시도가 좌절될 때마다 주저앉는 주식시장은 언제 다시 힘있게 차오를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는 외채 시장마저 불안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5일 재정당국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고채 보유액은 지난해 12월 약 3조원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선행지표 격인 선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 한국 국채(선물 3~30년물 기준)를 15조8949억원 순매도했다. 세계 3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예고될 만큼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던 우리 국채에 갑자기 ‘셀 코리아’ 흐름이 생겨났다.
계엄이 ‘피크 코리아’ 담론 더 강화
시장이 극도로 싫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확실성이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우리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가 재벌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필연적으로 안게 되는 불확실성에 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어느 나라의 국가 및 행정 권력의 운영이 과연 예측 가능하며 믿을 수 있는 것인가의 여부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나라의 법치 질서가 어느 만큼 확립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는 다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만큼 확고하게 그 나라에 뿌리를 내렸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부분에서 2025년 벽두 시점에서의 문제가 심하게 불거진다.
윤석열 개인과 거기에 동조한 일부 군인들의 행태는 일부 집단의 황당한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중순경만 해도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낙관적’ 시각이 우세했던 듯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 특히 응원봉 시위로 빛을 발한 시민들의 성숙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부각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는 관점은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에 전개되는 사태는 뚜렷하게 ‘내란 장기화’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문제가 윤석열 개인 및 일부 세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권한대행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친 뒤에도 행정부의 수반은 윤석열의 체포 및 수사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온전한 작동을 가로막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국회에서 여당은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헌정 질서의 조속한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자 윤석열 집단은 불법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체포에 저항하고 있으며, 여기에 일부 시민들마저 호응하여 집결하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여전히 존재
요컨대, 2024년 말 불거진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어느 개인과 소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훨씬 더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민주화 성과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았다. 윤석열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드러난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 여당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40년 전 군부독재 시절과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시민들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이것이 2025년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도, 설령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확실하다. 윤석열의 계엄 시도에 대해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구절을 들이대며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희화화하는 시각도 많았지만, 탄핵 이후 보름간 전개된 상황은 사태의 뿌리가 훨씬 더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피크 코리아’ 담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어이없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제는 정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2024년 12월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정부만 들어서면 모든 것이 원상복귀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로 새로 추가된 ‘코리아 리스크’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가 더욱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안팎으로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내란이 진행 중인 지금으로서는 내란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이에 맞서서 헌정과 법치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하며, 이것이 곧 최선의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너머에도 평안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0년간의 민주화 노력이 아직 굳게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는 아픈 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결함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선거에서 이겨 정권만 교체할 수 있으면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1980년대 식의 사고방식도 쇄신해야 한다. 허약함이 드러난 우리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2020년대의 시점에서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캐묻고 또 실천해야 한다. ‘피크 코리아’의 역전을 위한 최우선 선결과제는 이제 민주주의의 강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