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위기,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학자들은 종종 ‘사회적 모순’의 분출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이번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자들이 사회 갈등을 해석하기 위해 살펴보는 계급, 세대, 성별, 지역 중 이번 내란 사태와 연결된 것이 대체 무엇인가. 국민의 공통 감각과 현저히 벗어난 대통령의 비뚤어진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그리고 비상계엄과 연결되어 있는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이 보여준 일련의 폭압적 행위들이 사회를 공격하며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내수 경기 부진, 환율 급등, 대외적 경제 손실을 빚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시민이 사회이론가 미셸 푸코 말마따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며 거리로 나서고, 사회를 복원하겠다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상식 파괴하는 권력자들에 답답
부정선거론으로 대표되는 음모론은 정치적 갈등을 숙주 삼아 ‘코인’ 장사를 하는 유튜버, 이들의 ‘이론’을 빌미로 정치적 이익을 편취하려는 정치세력에 의해 조장되는 생태계의 재화일 따름이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드러낸, 가짜뉴스에 기반을 둔 비뚤어진 인식은 중요하지만 부차적 문제이다. 생각과 행동은 법적으로 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식에 호소한다. ‘상식’을 영어 단어로 풀어보자면 공통 감각(common sense)이다. 다수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 우리는 공통 감각 안에서 공분한다. 비상계엄이 진행되는 동안 TV를 보며 밤잠을 설치고, 내란 모의의 정황이 공개된 후 격분해 여의도에 모인 사람들, 거기에 응원을 보탠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몸으로 느끼며 공유해온 상식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은 고구마를 한 움큼 입에 넣은 것처럼 답답한 상태를 느끼는 건, 지금까지 공유해온 상식이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권력자들에 의해 깨졌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고 탄핵심판 절차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내란 항목을 제외했으니 재표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원에서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앞으로 공무원연금을 받을 국민의 공복인 대통령경호처는 마치 사병처럼 영장 집행을 수행할 공수처를 막고 거기에 수도방위사령부의 병사들을 동원했다. 경호처는 한남동 관저 주변에 철조망을 치기도 했다. 탄핵소추가 되고,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된 피의자는 관저 앞에서 농성하는 지지자들에게 함께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군의 입법자들은 헌정 파괴를 지지하는 시위 단상에 올라 ‘지켜내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고개를 숙인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속적으로 이 시국에 정치적 의사결정을 해도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야당 역시 딜레마 게임서 벗어나야
탄핵, 내란죄 여부는 헌법재판소와 사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시민들의 불안, 초조, 답답함은 일차적으로 헌법과 형사법이 해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1987년 개헌 이후 공권력의 자의적 동원을 제어하기 위해 형성된 모든 장치들이 권력집단에 의해 무시될 수 있다는 게 밝혀진 지금,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포함한 기본권을 지키는 ‘울타리’를 다시금 어떻게 두껍게 칠 것이냐는 문제를 반드시 헌정질서 재건이란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정치학자 서희경의 <87년 체제의 한국 헌정사>에 따르면, 6공화국 개헌 논의는 노태우 정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늘 레임덕 대통령은 개헌을 치적으로 쌓고 싶어 제기하고, 당선이 가까운 유력 후보는 확실한 임기 5년이 보장되기에 미적대다가 논의가 중단되었다고 전한다. 3번째 탄핵소추로 헌정질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발본적 문제 제기가 되는 지금, 야당 역시 딜레마 게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래야 헌정질서를 넘어선 ‘더 많은 민주주의’ 논의와 협상과 조정을 수반하는 정치 게임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다.
한 달여간 시민들은 혼란 속에서 일상을 잘 유지해왔고, 대다수의 공통 감각은 복원력을 발휘하며 깨지지 않았다. 민주주의 역시 시민들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다. 위기가 올수록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음모론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서로 다른 존재들을 배제하지 않고 끊임없이 교류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사실 그런 감각을 생활인들은 모두 공유하고 있다. 들어야 할 존재들은 입법자와 권력자들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