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요. 고맙습니다”…온기와 용기로 버틴 관저 앞 3박4일

오동욱 기자    이예슬 기자
캄캄밴드가 지난 6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체포’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작은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예슬 기자

캄캄밴드가 지난 6일 오후 4시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체포’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작은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예슬 기자

지난 6일 오후 4시30분쯤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캄캄밴드의 알토호른과 트럼본 소리가 울렸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칠레의 민중가요 ‘단결한 민중은 절대 지지 않는다’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시민 일부는 밴드 앞에서 공연을 감상하거나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트럼본을 잡은 ‘이름’(활동명)은 “오늘이 밴드 연습날인데 연습실 대신 집회장에 나와 밤샘한 시민에게 응원을 전하러 왔다”며 “시민들이 지치지 않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체포”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한이 만료되자 일단 해산했다. 시민들은 3박4일 동안 밤새워 외친 ‘윤석열 체포’를 끝내 보지 못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온기를 나누며 “윤석열 탄핵의 그 날까지 함께할 것”을 기약했다.

이들은 폭설에도 따뜻함을 전한 서로에게 고마움과 응원의 말을 건넸다. 한 20대 여성이 “여러분 사랑해요”라며 ‘깜짝 고백’을 하자, 한 노년 여성은 “헌재 앞에서 또 봐요”라며 화답했다. 한 10대 남성이 스케치북에 적은 “수고했어요”라는 글귀를 들어보이자 여기저기서 “화이팅”이라는 응원이 뒤따랐다.

천승훈 비서관(앞줄 왼쪽·29)과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에서 열린 ‘대통령 체포’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진보당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천승훈 비서관(앞줄 왼쪽·29)과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실 관저 인근에서 열린 ‘대통령 체포’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진보당 페이스북 갈무리

은박 보온포를 덮고 눈을 맞으며 길거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유명 초콜릿 제품을 연상시켜 유명해진 이른바 ‘키세스좌’ 천승훈 비서관(29·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은 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집회장에서 먹은 어묵이 어떤 포차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있었다”며 “덕분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천 비서관은 “(키세스단의) 주역은 2030 여성들인데 주목받게 돼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서로 부족한 것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탄핵 이후의 세상은 이런 따뜻함이 이어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추위를 피하도록 건물을 개방한 이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 중년 여성은 6일 귀가하면서 꼰벤뚜알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신부와 직원들에게 “이렇게 공간을 내줘서 고맙다. 덕분에 너무 잘 쉬었다”며 악수를 청했다. 집회 첫날부터 성당 건물을 개방해 쉼터와 화장실을 제공한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연대를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광렬씨(54)는 “젊은 분들 너무 많이 나와서 안 되기도 했지만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갈 수 있다 생각도 들었다”며 “그분들 덕에 새벽에도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잘못을 바로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야 집회의 온기는 노숙인 지원단체의 후원으로도 이어졌다. X(옛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여기(한남동 관저 앞)에서 2박을 해보니 세상에 노숙자는 없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모든 사람은 적절한 냉난방이 가능한 자기만의 집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한 여성노숙인 보호소는 “집회가 있던 5일, 6일 신규 후원자가 70명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보호소 관계자는 “나라의 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귀한 일”이라며 “시위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Today`s HOT
2월의 온화한 기후, 휴식을 즐기는 브라질 사람들 인도네시아의 무료 검진 실시 22곳의 산불 피해, 비상경보 받은 칠레 벌써 축제 분위기, 브라질의 카니발 시작 파티
8년 전 화재 사고 났던 그렌펠 타워, 철거 입장 밝힌 정부 코소보 미트로비차 마을 국회의원 선거
높은 튀니지 실업률, 취업을 요구하는 청년들 바티칸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군대 신년 미사
오염 물질로 붉게 물든 사란디 개울.. 심각한 예멘의 식량과 생필품 부족 상황 많은 눈이 쌓인 미국의 모습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개막식 앞둔 모습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