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우승 반지의 꿈’, 이렇게 이룰 줄 몰랐네요”

이두리 기자

LG ‘배팅볼 투수’ 조부겸

“버킷리스트 ‘우승 반지의 꿈’, 이렇게 이룰 줄 몰랐네요”

촉망 되던 교교 선수, 경기 중 사고
독립리그서 프로 도전하다 선택

홈 마지막 경기, 시구자로 마운드
숱한 시련에도 여전히 야구의 길

야구장에는 언제나 배팅볼 투수가 있다.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이들은 선수의 빛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조부겸(25·사진)은 LG의 배팅볼 투수다. 2023년 5월에 LG에 들어온 그는 그해 잠실 그라운드에서 통합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제 버킷 리스트에 ‘우승 반지 받기’가 있었어요. 군대에 있을 때 인터넷에서 이미테이션 우승 반지를 주문해서 관물대에 놔두고 보면서 ‘제대하면 프로 데뷔해서 우승 반지 받아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이런 경로로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난 3일 잠실야구장에서 조부겸을 만났다. 그는 비시즌에도 야구장에 출근하며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배팅볼 투수의 대부분은 프로의 벽을 넘지 못한 과거의 야구 꿈나무들이다. 프로선수를 상대로 정확하게 공을 던져 주는 일이니만큼 수준 높은 제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부겸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 촉망받는 좌완 투수였다. 2019년 청룡기에서 천안 북일고를 4이닝 노히트로 틀어막은 조부겸은 5회 타자가 친 공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이후 팔꿈치 부상 등 건강상의 악재가 몰아쳤다. 프로 도전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조부겸은 독립 야구단 성남 맥파이스에서 야구선수의 꿈을 이어갔다.

조부겸은 “독립야구를 하면서 ‘청춘야구단(KBS)’ ‘최강야구(JTBC)’에도 나가 보면서 프로에 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힘들던 와중에 배팅볼 투수 제안을 받았다”며 “평생 야구선수를 꿈꾸며 살아왔는데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많이 낙담했다”고 말했다.

LG의 쟁쟁한 베테랑 타자들에게 공을 던지며 처음엔 긴장도 많이 했다. 조부겸은 “내가 (김)현수 형 같은 베테랑 선수에게 공을 던지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라며 “그때까지 공을 안 맞으려고만 던졌지, 누군가의 배트에 맞기 위해 던진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조부겸은 “배팅볼 투수가 참 잔인한 직업이다. 선수와 함께 야구장에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제 고등학교 동기인 이상혁(24·한화)이 LG를 상대로 첫 안타를 치는 걸 보면서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되나 싶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난 LG에서 우승도 해봤다. 이런 게 운명이 아닐까”라며 웃었다.

조부겸은 지난해 만원 관중인 잠실 야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9월26일 키움전, LG의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다. 조부겸을 비롯한 6명의 현장 스태프들이 시구자로 나섰다.

조부겸은 “제가 아직 전력으로 던지면 구속이 130㎞ 후반까지 나온다”며 “어렸을 때 잠실에서 야구를 보면서 언젠가 저기에 설 날이 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으로라도 꿈을 이루게 돼서 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조부겸은 여전히 야구가 좋다. LG에서 배팅볼을 던지고, 사회인 야구에서 그라운드에 서고, 각종 스포츠 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매일 야구 생각을 하고, 야구 이야기를 하고, 야구 공부를 한다. 조부겸의 야구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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