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에서 최고의 지도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독일 제국을 이룬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가 수위를 다툴 것이다. 그는 황제가 아니었지만 황제 이상의 영향력과 정치력으로 독일은 물론 유럽 각국을 쥐락펴락했다. 오죽했으면 그를 독일 제국의 첫 재상으로 임명한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 아래에서 황제 노릇 하기 참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비스마르크는 민주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아이러니컬하게 비스마르크는 의회를 무력화하고, 헌법을 무시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를 결과적으로 신장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오늘날 중요해진 3대 보험(의료보험·산재보험·노령연금)을 처음으로 만들어 복지국가의 모델을 만든 인물로 칭송받고 있다.
당시 독일의 평균 기대수명은 40세 정도였는데,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70세로 정했다. 사실상 그의 연금정책은 노동자의 복리 증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권 안정을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200여년 전에 태어난 비스마르크를 칭송하는 이유는 그가 최초로 만든 공적연금이 오늘날 노동자와 은퇴자들에게 목숨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지난해 말 정부는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명으로, 전체 인구 5122만명의 20%를 차지한다고 공표했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 이상은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후 2018년 고령사회가 되었다. 프랑스가 115년 만에 진입한 고령사회에 우리는 18년 만에 들어섰다. 게다가 고령사회에서 6년여 만에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일본(10년), 독일(37년) 등을 제치고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이렇게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빠른 것은 기대수명이 어느 나라보다도 삐르게 늘어나고,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개인적 어려움이 국가적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65세 이상의 은퇴자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이 많다. 2024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주들이 생각하는 2인 최소 월 생활비는 240만원, 적정생활비는 336만원으로 5년 전에 비해 각각 41만원, 45만원 정도 증가했다. 그만큼 은퇴 이후 생활비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실제 은퇴 가구주 중 노후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다고 대답한 경우가 절반 이상(53%)에 달했다. 현재 은퇴 가구는 공적수혜금(32%), 공적연금(30%), 가족 수입 및 용돈(24%), 개인저축·사적연금(5%) 등으로 조달하고 있어서 생활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새로운 일자리 외엔 없다.
이러한 상황이 ‘쉬지 않는 노인’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403만명으로, 20대 취업자 수를 이미 2024년 3월에 넘어섰다. 경제활동참가율도 노인층(48.0%)과 청년층(48.1%)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데, 이는 청년층에서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쉬었음’이라고 답한 비경제활동인구가 20% 이상 증가한 결과다. 즉 ‘일하고 싶은 노인, 쉬고 싶은 청년’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실 은퇴(隱退)라는 말은 원래 동양의 언어가 아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직업적 분류가 신분이 되는 계급사회에서는 모든 직업이 천직(天職)이었으므로,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근대 서구사회에서 은퇴는 확고한 연금제도 기반 위에 만들어진 사회적 산물이다.
최근 연금과 관련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기금 고갈과 소득대체율 등의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초고령사회 진입과 젊은 세대들의 달라진 인식까지 겹쳐 은퇴, 퇴직, 정년, 연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재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 되었다. 130여년 전 공적연금을 만든 비스마르크는 ‘은퇴 후 일을 하려고 하는’ 이런 현상을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