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누가 무엇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벌인 시대착오적 계엄 사태가 대통령 파면을 향해가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벚꽃대선, 장미대선 보도가 나오니 늦어도 초여름에는 새 정부가 들어설 듯하다.

사실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당황스러웠다. 시민들의 분노는 깊어갔고 정치권에서 일찍부터 탄핵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대통령의 계엄 망상이 자신의 파멸을 앞당긴 꼴이다. 그런데 마침내 ‘대통령감’이 안 되는 사람을 탄핵시키면, 대한민국 시민들은 평안해지는 걸까? 헐값 노동에 하루하루가 힘겹고, 전월세에 허리가 휘며, 여러 차별에 고통받는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까? 안타깝게도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우리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은 다시 한번 발휘되었다. 과거 군부독재에 맞선 1970, 1980년대 민주화운동, IMF 금융위기에서 나라를 살리려는 시민들의 헌신, 광우병 쇠고기와 무상급식 복지 촛불에서 분출된 ‘함께 살자’ 열망, 그리고 박근혜 국정농단을 심판하는 헌법수호 촛불 등 지난 반세기 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생과 공존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저력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는 늘 여기에서 멈추어야 했다. 뜨겁게 분출하는 민심이 민생으로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이를 수행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장벽으로 작용하는 한국 정치체제 탓이다. 이번에는 어떨까? 윤석열 탄핵이 이루어져도 이후 상황은 여전히 어려울 거란 우려가 든다.

우선 문재인 정부에서 맛본 좌절 경험이 크다. 당시 박근혜 탄핵은 사실상 극우 보수 뿌리를 뽑아내는 무혈 시민혁명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환호하며 곧바로 문재인 정부를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이루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포장만 요란할 뿐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형성된 시대적 열기를 밑거름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기엔 비전도, 의지도 빈약했다. 지금 민주당은 다를까? 아마도 이번에도 권력을 넘겨받겠지만, 새 정부가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것이란 기대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도 약할 듯하다.

왜 탄핵 이후 민주당 정부에서 새 세상을 꿈꾸기 어려울까? 시대적 과제인 불평등 대응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최근 행보만 보아도, 한국사회 불평등 고착화의 핵심 원인인 자산 불평등 앞에서 기득권 쪽에 줄을 선다. 주식 투자에서 얻은 이익이 5000만원을 넘을 경우에만 내는 세금조차 폐지하고, 가상자산 과세도 계속 연기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집값이 오른 집부자들의 종합부동산세 감면도 이미 실행하였다. 자산가치가 불어나 생긴 집부자들의 보유세 증가는 당장 풀어줘야 할 현안이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동시에 솟아오른 전월세금은 집 없는 서민들이 빚까지 내서라도 감당해야 하는 숙명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게다가 조국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사회 양극화의 또 하나의 경로인 교육 영역에서 일반 시민들이 지켜온 교육 경쟁의 기본 윤리가 무너져도 진영논리에 안주해 버린다. 한국사회 거대 양당체제가, 피케티가 설명하듯이, 서민의 불평등 현실을 타파하기보다는 기득권 이해를 옹호하는 상층 엘리트들의 연합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탄핵 이후, 누가, 어떤 개혁을 추동해야 할까? 조기 대선에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는 게 예상할 수 있는 결과라면, 이번 대선에서 정작 소중하게 일구어야 할 건 불평등과 차별에 대응하는 사회대개혁 의제의 명확한 수립과 이를 추동하는 진취적인 세력의 발돋움이다. 이미 탄핵 광장에서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득권에 익숙해진 거대 엘리트 정당들의 정권교체 너머 사회 대전환의 상상,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양한 의제들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이런 요구들이지 않을까. ‘집값을 동결하자, 모든 소득에 반드시 누진과세하자, 일하는 시민 모두의 노동권을 보장하자, 어떤 시민에게든 최저소득은 제공하자, 어떠한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 기후위기에 당장 실천하자’ 등등.

계엄 사태 이후 우리에게는 두 개의 광장이 연이어 놓여 있다. 탄핵 광장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하고, 탄핵 이후 조기 대선 광장에서는 새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민주주의를 지키고, 함께 사는 공존을 열망하는 우리 시민들의 에너지는 정말 대단하다. 이 긍지와 자부심으로 올봄 세상을 바꾸는 농사를 지어보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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