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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시커

입력 2025.01.08 20:54

수정 2025.01.0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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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생일에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엄마가 재고용 되는 거.”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유능한 생활 지원사였고, 그와 같은 국가 일자리는 1년에 한 번씩 고용을 갱신한다. 그의 운명은 곧 그에게 통보될 예정이었다. 그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선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낮게 웃었다. “야, 말도 꺼내지 마. 나 덜덜 떨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재고용이 아니라 추워서 떨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시골의 추위는 매섭고, 기름보일러를 한 번 채우는 값은 60만원이다. 그것만은 절대 변함없는 한 가지 진실이었다. 우리는 자주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기름값의 신이시여. 저희에게 낼 돈을 주소서. 기도는 전해지지 않았고, 엄마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너무 많은가 봐.” 꿈에서 깬 사람처럼 말했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입이 닳도록 말했다. “스무 살이면 나가.” 나는 효녀라, 열아홉에 집을 나가 독립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가라고 했을 뿐 돌아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기에, 나는 서른 살이 되는 해 집으로 돌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젊은이들을 캥거루족이라 하는데, 나의 경우 경제적 독립을 했다가 다시 얹혀 사는 것이니 역-캥거루족이 아니겠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전혀 웃기지 않은 얘기였다. 같이 살지 않은 10년간 엄마는 남편을 잃었고, 나는 적금을 잃었으며, 둘 다 도시에 질려 있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산골짜기의 작은 투룸에서 모녀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안방에는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는 사기성 이벤트에 걸려 생애 처음 찍었던, 우리가 아무것도 잃지 않았을 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이좋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우리는 룸메이트로서도 최악의 궁합을 보였다. 나는 전화번호부에 엄마를 ‘옆방 아주머니’라고 저장해 두었고, 엄마는 냉장고에 만든 반찬을 넣을 때마다 꼬박꼬박 자신의 이름을 써두었다. 걸음걸이부터 말투, 식성, 취향까지 비슷한 게 없었다. 그런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진로 고민이었다. 30대인 나도, 60대인 엄마도 뭘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결같이 쭉 고민이었다. 한 달을 일해야 한 달을 살 수 있는 신세는 평생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장래 희망을 찾아다니는 드림시커였다.

시골의 일자리라는 것은 대중이 없었다. 온갖 일자리를 거쳐 나는 초등학교의 보조교사로, 엄마는 생활 지원사로 일하게 되었다. 나는 나보다 어린 이들을, 엄마는 엄마보다 나이 든 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다. 가끔 시골길을 걸으며 우리가 만나는 얼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가 지나온 날과 맞이하게 될 날이 한곳에 모여드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천직을 찾은 것 같았다. 아이와 노인, 엄마와 나의 얼굴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문자를 받았다. ‘예산이 모두 소진되었으니 내일부터는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 말고도 모든 보조교사가 한날한시에 연락을 받았다. 매일같이 만나던 아이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였다. 미국 실리콘밸리나 IT 기업에서 직원들을 이런 식으로 해고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내가 그걸 이 시골에서 몸소 겪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예산은 삭감되었다. 사회에 필요한 것들이 예산이란 이름 아래 묻어지고 있었고, 내 직업도 그중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는 나란히 실직자가 되어 새해를 맞았다. 엄마와 나, 아이들과 할머니들에게 주어진 1년짜리 만남, 1년짜리 이별, 1년짜리 꿈이었다. 여전히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은 진로 고민이다. 우리는 꿈을 찾고 있다. 아주 익숙하고, 익숙한 기분이다.

양다솔 작가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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