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계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에다 탄탄한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 업체의 약진,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불확실성 고조 등의 현상이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각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에 225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전년 동기(영업이익 3382억원)와 비교해 적자 전환했다고 9일 공시했다. 전 분기(영업이익 4483억원)와 비교해도 실적 악화가 뚜렷하다.
국내 1위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의 분기별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선 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금액을 실적에 반영하기 시작한 2023년 이후 처음이다. AMPC(3773억원)를 제외한 지난 4분기 영업적자 규모는 무려 6028억원에 이른다.
4분기 매출은 6조4512억원으로, 전년 동기(8조14억)보다 19.4%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5754억원)과 매출(25조6196억원)도 각각 전년보다 73.4%, 24.1% 감소했다.
4분기 매출 감소는 고객사의 연말 재고 조정에 따른 물량 감소, 메탈가 하락에 따른 판가 영향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업이익의 경우 전략 지역인 북미 고객사의 물량 축소로 고수익성 제품 출하 비중이 줄어든 데다 공급 과잉에 따라 인건비, 공장 가동 비용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했고, 연말을 맞아 ‘재고 처리’라는 일회성 요인까지 가세하면서 실적을 가파르게 끌어내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전사 차원의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캐즘과 요동치는 세계 각국의 친환경·에너지 정책의 변화 등 단기적 위기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투자·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글로벌 생산공장 호환성 증대와 매각을 통한 자산 효율 배분 등의 작업을 강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전기차 외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각 사업 부문의 추가 수주를 통한 매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지름이 46㎜인 원통형 배터리(46시리즈)와 리튬인산철(LFP), 각형 등 새 폼팩터를 통한 사업 경쟁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SDI와 SK온도 사정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IBK투자증권은 이날 “삼성SDI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2017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재집권으로 IRA 등 배터리 산업 지원책이 폐지 또는 축소될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시행하려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등 환경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8일 열린 웹세미나 ‘경기 둔화와 트럼프 2.0의 파고 속 2025 산업별 전망 분석-기업 부문’에서 2차전지 산업을 두고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전환 및 투자 계획 이연·축소,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등 수요 측면에서 부정적 이벤트가 우세하다”면서 전기차·배터리 업종의 약세 지속을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