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국내에 24조3000억을 투자한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투자 집행액인 20조4000억원에서 3조9000억원(19%) 늘어난 금액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일 신년회에서 현 상황을 ‘퍼펙트 스톰’(다발적 악재에 따른 경제적 위기)으로 진단하며 “비관주의에 빠져 수세적 자세로 혁신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지 사흘 만에 나온 투자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어느 때보다 돌발적인 경영 변수가 산재해 있는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국내 투자 단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침체하는 상황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유지하려면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의 내수 판매는 135만8842대로 전년 대비 6.4% 줄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4만5000대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신차 효과를 봤던 르노코리아를 제외하고 현대차(-7.5%), 기아(-4.2%), 한국GM(-35.9%), KGM(-25.7%) 등 4개사가 내수 시장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국내 투자처를 보면 연구·개발(R&D)에만 1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제품 경쟁력 향상, 전동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수소 제품 및 원천기술 개발 등 미래 역량 확보를 위해 사용된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모두 21개 모델의 전기차 제품군을 구축할 예정이다. 기아도 2027년까지 목적기반차량(PBV)을 포함해 15개 모델의 전기차를 내놓는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하이브리드 모델과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주행거리 연장형 자동차(EREV) 등을 더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전기차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경상 투자에 12조원, 전략 투자에 8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경상 투자는 전기차 전환 및 신차 대응 생산시설 확충, 제조 기술 혁신, 고객 체험 거점 등 인프라 보완에 집중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가동 중인 기아 광명 이보 플랜트에 이어 올해 하반기 완공하는 기아 화성 이보 플랜트와 2026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인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전기차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차체를 부품과 통째로 제조하는 신공법인 ‘하이퍼캐스팅’도 울산공장에 도입한다.
전략 투자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차원이다. SDV 분야에서 2026년까지 차량용 고성능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적용한 SDV 페이스 카(Pace Car) 개발 프로젝트를 완료해 양산 차에 적용할 계획이다. 신규 모빌리티 디바이스 개발, 로보틱스 등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산업군별로 살펴보면 완성차 분야 투자액이 전체의 67%인 16조3000억원을 차지한다. 나머지 8조원은 부품, 철강, 건설, 금융, 물류, 방산 등에 들어간다. 부품 분야는 전동화 기술 개발, 생산라인 증설, 친환경 부품 개발, 전기차 모듈 신공장 구축 등이다. 철강 분야는 액화천연가스(LNG) 자가 발전소 건설, 친환경 소화 설비 신설 등을 추진하고, 건설 분야는 수전해 수소 생산 실증사업,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인프라 구축 등 신사업 발굴이 투자 대상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위기 타개의 본거지로 국내를 선택한 건, 국내 대표 기업으로서 경제 활성화와 전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에 기여함으로써 책임 의식을 다하겠다는 측면도 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판매 비중이 약 4분의 1에 달하는 미국 시장을 비롯한 해외 투자 계획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 투자는 수입품에 대해 10∼20% 수준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