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정훈 대령 항명 무죄, ‘윤석열 격노’ 유죄라는 의미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항명 등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9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항명 등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9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원칙대로 조사해 경찰에 이첩했다가 항명 등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채 상병이 숨진 지 1년6개월 만, 박 대령이 기소된 지 1년3개월 만이다. 애당초 잘못된 기소가 사필귀정으로 일단락됐다.

쟁점은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조사기록을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고 박 대령에게 지시했는지, 그 명령이 적법한지 여부였다. 군사법원 재판부는 “김 전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내린 구체적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김 전 사령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전 사령관이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고 보기 어렵고, 군사법원법상 그런 부당한 명령은 거부해도 항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이 사건을 이첩하자 ‘이첩 중단’을 명령하고 조사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했다. 재판부는 이 부분도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첩 중단 명령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고, “장관 지시는 채 상병 사건 인계서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빼려고 부당한 외압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이 왜 그랬는지는 이미 알려진 터다. 대통령 윤석열이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격노한 직후 이첩 보류 지시 등이 이어졌다. 당일 윤석열과 이 전 장관이 직접 통화한 사실도 확인됐다. 윤석열은 해병대가 조사 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한 당일에도 개인 휴대전화로 국방부 차관과 8분45초간 통화했다. 그 전후로 대통령실 참모들은 국방부·경찰·해병대와 집중적으로 통화했다. 부당한 수사 외압의 배후가 윤석열이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박 대령의 항명 혐의와 수사 외압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면 항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박 대령이 무죄이면 외압을 가한 자는 유죄이다. 군사법원은 이날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윤석열·이종섭으로 이어지는 외압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수사는 대통령실 앞에서 수개월째 멈춰 있다. 윤석열 내란죄를 수사하는 공수처는 이 사건 또한 강도 높게 수사해야 한다.

박 대령이 그랬듯이 군경 고위 간부들이 윤석열의 위헌·위법적 지시를 거부했다면 12·3 비상계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법·부당한 명령은 거부하는 게 옳다는 이날 판결은 현 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직사회에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고, 박 대령뿐 아니라 부당한 지시에 고뇌하는 다른 ‘박정훈들’에게 용기를 주는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누구보다,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윤석열 체포·수색 영장의 집행을 막는 데 동원된 경호처 직원들이 이 판결 의미를 깊게 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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