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호원숙이 기억하는 여행가 박완서

최민지 기자
[책과 삶] 딸 호원숙이 기억하는 여행가 박완서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박완서 지음
문학동네 | 248쪽 | 1만6800원

작가 호원숙이 기억하는 어머니 박완서는 자주 그리고 가볍게 떠나는 여행가였다.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빨간 크리스마스 리본이 달린 캐리어를 챙겼다. 짐은 간단하게 쌌다. 여행 전날 밤이나 가는 날 아침에 했고 늘 간결했다. 박완서는 가깝게는 집 근처 남한산성부터 강원 강릉, 멀게는 티베트와 에티오피아까지 그렇게 다녔다. 그리고 일부를 글로 남겼다.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은 한국 문단의 거장 박완서 14주기를 기념하는 여행산문집이다. 2005년 발간된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재편집하고, 지금껏 책으로 엮인 적 없는 미수록 원고 다섯 편을 더했다.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와 여행에 관해 쓴 글 ‘엄마의 여행 가방’도 함께다.

총 14편으로 이뤄진 책에서 박완서는 부지런히 여행을 다닌다. 뛰어난 작가는 남들 다 가는 여행지에서도 특별한 것을 포착해낸다. 남한산성에서 빽빽한 서울의 아파트 숲을 내려다보면서 조선의 굴곡진 역사를 떠올린다. 에티오피아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면서는 “굶어죽는 것처럼 서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진행되는 죽음이 또 있겠느냐”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고 급하게 떠난 강릉 여행에선 소박한 순두부 요리를 먹고 진정한 ‘호강’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박완서에게 여행이란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비쳐보는 일이다. 그는 중국 만주에서 이렇게 적는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박완서라는 ‘렌즈’를 통해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나면 숙연해지면서도 어쩐지 앞날을 낙관하게 된다. 이미 가본 곳조차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다. 새해와 잘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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