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 늘어나면 지방의료 되살아날까··· “일차의료 제대로 돼야 응급실, 입원실 이용 줄어든다”

이혜인 기자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이 2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군보건의료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일차 의료 시스템 마련을 강조했다. 정효진 기자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이 26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군보건의료원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일차 의료 시스템 마련을 강조했다. 정효진 기자

“저는 일차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지면 결국은 큰 병원 입원실, 응급실 이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2023년 3월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살면서 한 번도 연고가 없던 평창으로 왔다. 그는 예방의학 전문의이자 보건학 박사다. 8년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근무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 경기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장과 감염병관리지원단장으로 일했다. 몇십만에서 몇백만명 단위의 지자체 보건을 책임지던 그가 인구 4만명 남짓한 작은 도시 평창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1월 말 의료원에서 만난 그는 ‘경기도에선 하기 어려워도 평창에서는 할 수 있는’ 시도들을 이야기했다.

일차의료(primary care)는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의미한다.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 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1~3차로 나눠놓은 의료전달체계와는 결이 다른 개념이다. 일차의료는 사는 곳을 기반으로 만성질환의 예방과 관리, 건강증진 활동 등이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동네 의사’ ‘주치의 제도’ 등이 일차의료 중심의 진료체계 제도다.

노령 인구가 전체의 35%, 만성질환자 비율도 높은 평창은 그 어느 지역보다 일차의료 시스템이 절실한 곳이다. 박 원장은 기존 보건소에서 건강증진 사업을 하던 방식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보통 보건소에서 건강증진 사업을 하게 되면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해요. 그러면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하고 싶어하던 20여명이 와요. 성과평가도 이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전체 인구가 좋아지는 것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제대로 된 평가와 관리를 하려면 넓은 인구 집단을 등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해요. 어렵지만, 인구가 적은 평창에서는 가능한 일이죠.”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조직개편’이다. 지난 한 해 그는 평창군청에 건의해 건강증진과의 조직 개편을 추진했다. 기존 정신건강팀, 치매안심팀 등 건강 사업별 조직을 평창권역팀, 대화권역팀 등 지역 기반 팀제(4개)로 바꿨다. 개별 건강증진 사업이 잘되는지보다 각 지역에서 일차의료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박 원장은 “다들 일이 많아져서 언제 두 손 두 발 들고 나갈지 모른다”며 고민 섞인 농담을 건넸다. 이어 “서로 돌보는 공동체는 의료인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가장 좋은 것은 동네에서 알아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서로 돌보는 공동체, 지역의 힘, 공공과 민간의 협력” 등의 키워드가 담겨있었다.

적은 액수지만 공보의 대상 ‘업무활동장려금’ 지급방식을 개편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어느 누가 오더라도 나서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아직 미약하지만, 좋은 판을 깔아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면 공보의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3년이라는 긴 복무 기간 동안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지역 의료 수련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 원장은 좋은 일차의료를 위해 ‘시스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1, 2, 3차 병원에 서로 환자 한 명을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했다. 의료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대가가 지급되는 행위별 수가제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환자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를 따지는 ‘규모 기반’이 아니라 환자 건강이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를 보는 ‘가치 기반 지불 보상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원과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주도하고, 민간 의원급이 함께 참여해 등록된 환자의 건강 결과 향상에 따라서 수가를 받는 ‘등록 관리제’를 시도해볼 만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 원장은 ‘의사 수 증원’에 대해서도 이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늘어난 의료인력이 ‘저절로’ 지역으로 향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박 원장은 “미래 의료개혁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과 별개로 지불 보상 제도를 바꾸고, 일차의료라는 목표하에 협력이 가능한 의료 전달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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