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불량 변론’에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최정규 변호사 인터뷰
![최정규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서초구 공유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https://img.khan.co.kr/news/2025/01/11/news-p.v1.20250109.3eda0ce4ba4b4c74b767b52a6fdf0e71_P1.jpeg)
최정규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서초구 공유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주간경향]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83년의 일이다. 대학 입학 2년 뒤 군 복무 중이었던 박만규 목사는 그해 9월 경기 과천 국군보안사령부 분소 인근의 한 아파트에 끌려갔다. 열흘간 고문을 당한 그는 보안사로부터 대학 동아리 동료들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지속해서 사찰을 당하게 된다. 학생군사교육단(ROTC) 후보생이었던 이종명 목사 역시 충남도청 부근의 보안부대로 끌려가 일주일간 고문을 당하고 같은 일을 겪었다. ‘붉은색을 푸르게 한다’라는 신군부의 이른바 녹화 공작 피해자가 된 것이다. 훗날 ‘대학생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에 대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권위주의 정권이 자행한 대규모 인권침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박만규·이종명 목사는 2022년 12월 진실화해위로부터 이 사건의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듬해 두 사람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가해자인 ‘국가’의 태도에 충격을 받게 된다. 국가 측 변호인은 피해 증명의 부족, 손해배상 시효 소멸, 배상액 과다 등을 이유로 “배상할 수 없다”라고 맞섰다. 박만규·이종명 목사가 피해자로 인정받을 당시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 회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권고했건만, 법정에서 만난 국가는 완전히 딴소리를 했다.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배상 책임을 부인하며 되레 상처를 입히는 국가의 태도는 과연 옳은가. 박·이 목사의 괴로움을 곁에서 지켜보던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법정에서 색다른 변론을 해보기로 한다. 국가의 ‘2차 가해성 변론’, ‘진실화해위 권고 미이행’의 불법성을 따져보기로 한 것이다. 유죄 선고를 끌어내진 못했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국가의 ‘불량 변론’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은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서초구의 한 공유사무실에서 최 변호사를 만나 ‘국가폭력 가해자’인 국가의 뻔뻔한 태도를 법의 심판대에 세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하는 일문일답.
-프락치 강요 사건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정부 변론이 불법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우리는 배상 책임이 없다’라는 정부 답변서를 보고 의뢰인들(프락치 강요 사건의 피해자인 박·이 목사)이 너무 황당해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봤다. 40여 년 전에 입은 상처와 이 상처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안 하고 ‘배상 청구할 거면 해. 그런데 너희가 피해자인지 모르겠고 배상 청구권은 소멸했어’라고 한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가 무죄를 주장하면서 피해자에게 아픔을 주는 경우와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의지를 보이는 경우의 양형은 다르지 않은가. 관행으로 굳어진 국가의 불량 변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판도를 바꿔보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제기한 것인가.
“두 가지다. 진실화해위의 권고 사항(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 등)을 이행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불법 행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위반)라는 것과 억지 논리로 시효 소멸 등을 주장하는 등 무리한 항변은 원고들의 정당한 신뢰를 훼손하는 불법 행위(민사법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라는 것이다. 국가의 뻔뻔한 태도는 1심에서 주로 접했고, 항소심에서 과거 국가폭력에 대한 손해배상 외에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도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국방부 등 6개 국가기관에 피해자에게 사과할 것, 피해 규명을 위한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명예회복 및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 회복 방안을 실현할 것 등을 권고했다. 지난 3년간 권고가 이행되지 않은 건가.
“앞으로도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이기려 드는 국가의 태도를 법정에서 계속 문제 삼겠다. 지금과 같은 국가 변론은 피해자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따지자 ‘피고 대한민국’ 측은 이행계획이 확정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할지는 함구한 채 그저 절차 진행 중이라고만 했다.”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질 때마다 진실화해위는 정부에 사과, 재발 방지 대책, 피해 회복 대책 등을 권고해왔다. 과거사정리법에 따르면 국가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을 존중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제껏 진실화해위의 권고에 대한 국가기관의 태도는 ‘권고는 권고일 뿐’에 가까웠다. 진실화해위의 권고를 이행하려는 노력이 없었음을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의 답변은 행정 편의주의적이었다. 행정안전부에 설치된 ‘과거사 관련 권고사항 처리 심의위원회’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 위원회에 국방부 등이 제출한 권고 이행계획은 ‘절차 진행 중’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사과에 대해선 ‘사과 주체, 방법, 시기 등을 검토해 추진’, 피해 회복 조치와 조사기구 설치 등에 대해선 각각 ‘국회 및 관계부처와 협의해 입법 추진’ 정도의 추상적 방향을 나열한 수준이었다.
![최정규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서초구 공유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https://img.khan.co.kr/news/2025/01/11/news-p.v1.20250109.fde53c3e52414e19a840db9d0e521da0_P1.jpeg)
최정규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서초구 공유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프락치 강요 사건의 경우 1심에서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자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어쨌든 사과하긴 한 것 아닌가.
“사과는 만나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도자료 사과’가 어디 있나. 그리고 진실화해위 권고에 따르면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군사안보지원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사과를 해야 한다. 이들을 대신해 사과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대통령뿐이다. 왜 법무부 장관이 대신 사과를 하나. 특히 국방부는 지금까지도 사과가 없다. 과거의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에 12·3 비상계엄 사태도 일어난 것 아닐까.”
-국가의 변론이 ‘2차 가해’라는 주장도 펼쳤다. 특히 시효소멸 변론을 문제 삼았는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명확한 ‘불량 변론’이라고 봤다. 2018년 헌재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 등에 장기 소멸시효(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하는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프락치 강요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가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한 사건이다. 위헌적 논리를 펼친 건 평균적인 소송수행자가 기울였어야 할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것이다.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 측 변호는 대개 법무부가 지휘하는데, 경찰이 대응한 사건에선 이런 주장이 안 나온다. 게다가 법무부는 2023년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런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법무부는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가 장기소멸시효로 인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 관여하는 관련 정부 기관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결정을 존중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효 소멸 논리가 위헌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게 일부러 괴롭히는 게 아니라면 뭔가.”
-국가 측 변호인은 진실화해위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은 박·이 목사에게 ‘피해 입증을 다시 하라’고도 했다.
“당사자의 일관된 진술과 국방부 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피해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만약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못 믿겠으면 반증 책임은 국가에 있다. 아무런 증거 없이 ‘못 믿겠다’라고 하는 것도 불량 변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더 높은 수준의 피해 증명을 요구한 것까지 잘못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국가폭력 사건의 성격이다.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지낸 이재승 건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조직적 인권침해 사건에서의 사법은 일반적인 사건과 달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 바 있다. “국가 범죄와 관련된 증거들은 공권력에 의해 빈번히 인멸되거나 조작된다. 공직자든 국가든 과거의 잘못을 둘러싸고 피해자와의 경쟁에서 이익을 취할 수 없다. 기록파괴와 증거인멸이 국가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기록파괴를 부추기고 인권침해를 조장하고 거기에 보상까지 더해주는 셈이다. 양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책임을 더욱 엄히 추궁하는 때에만 국가폭력을 멈추게 할 수 있다.”(‘이행기 정의와 법학방법론’, 2023년, 민주법학 83호)
-‘진실화해위의 권고 사항 미이행’과 ‘2차 가해성 변론’이 불법이라는 주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나.
“신뢰 훼손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쉬운 결론이다. 권고사항 미이행에 대해서도 ‘절차 진행 중’이라는 정부 답변을 받아들여 우리 측 주장은 기각됐다.”
-재판에선 누구나 이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인이라면 재판에서 이기는 데 혈안이 돼 모든 주장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국가는 소송당사자이기도 하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이중적 지위에 놓여 있다. 더구나 국가는 진실화해위로부터 사과와 피해 회복 권고까지 받은 상황 아닌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이후(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의 국가 태도는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과 품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왜 국가는 피해자와 싸워 이기려 할까.
“국가의 권위주의적 속성이 남아 있다고 본다.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감히 어떻게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가’라는 생각이 깔린 것 같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이겨서 국가에 남는 건 법무부 소송 수행 담당자의 인사고과 정도가 아닐까. 최소한 국익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기 위해 개별 소송을 벌이지 않아도 되도록 배·보상 특별법을 만들었어야 한다. 2022년 11월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 사건에 대한 배·보상 법안 입법’을 국회와 정부에 권고했지만 모두 나서지 않았다. 2023년 유엔의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 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피해자들의 개별 소송에 관해 설명했더니 신기하게 보더라. 조직적 인권침해가 있었던 대개의 나라에서는 피해자가 굳이 소송에 나설 필요가 없도록 배·보상 입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이기려 드는 국가의 태도를 법정에서 계속 문제 삼겠다. 국가가 2차 가해성 변론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이 올 거로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국가 변론은 피해자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