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5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 서초구와 경기도 일대 4곳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689만㎡(208만 평) 규모의 신규택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동석했다. 오 시장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221만㎡ 면적에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미리 내 집)을 공급할 계획이라며 “창고, 텃밭, 비닐하우스, 화훼 판매장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깜짝 놀랐죠.” 지난 8일 만난 이세연씨(69)가 얼굴을 마른세수 하듯 연신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씨는 태어나 평생을 송동마을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까지 17대에 걸쳐 마을을 지켜왔다. 그는 17대 종손이다. 서초구청은 1996년 12월 이씨 집안에 ‘자랑스런 서초 토박이’ 증서를 전달했다. 1540년부터 1996년까지 450여년간 대대로 이곳을 살아왔다는 증명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씨는 집 거실 한쪽 벽에 이 증서를 걸어뒀다. 이 마을에는 이씨 외에도 친척 6가구가 함께 거주하고 있다. 한때 이곳은 전주 이(李)씨 집성촌이기도 했다.
송동마을은 서리풀지구에 있는 집단취락지구다. 집단취락지구란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주민이 집단적으로 모여사는 지역을 말한다. 주로 도시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 많이 형성돼 있다.
서리풀지구에는 송동마을 외에도 식유촌마을, 새정이마을 등 3개의 집단취락지구가 자리잡고 있다. 세 마을을 합하면 130가구 정도가 이곳에 산다. 송동마을에는 현재 37가구가 거주 중이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들이 마주보고 있다. 마을 끝에는 양봉장도 자리잡고 있다.
이씨의 배우자 김연선씨(66)는 “정부에서 무슨 그린벨트 해제 발표를 한다고 해서 ‘아, 이제 우리 마을도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1종 주거지역으로 바꿔주려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지, 마을을 전부 강제수용해서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는 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마을 부녀회장이기도 한 김씨는 “발표가 날 때까지 마을 주민 누구도 우리 동네가 강제수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송동마을을 비롯한 세 집단취락지구는 정부가 그린벨트 지역으로 지정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던 ‘사유지’였다.
“그린벨트 지정도 모자라 강제수용까지 하나”
박정희 정부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겠다는 목적으로 1971년 7월30일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했다. 송동마을도 그때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집을 뺀 나머지 전답들은 강제수용됐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80년 초, 정부는 마을 한 켠에 대지를 조성하고 상하수도 시설 등 기반시설을 정비한 뒤 흩어져 있던 집들을 한쪽으로 몰았다. 그리고 ‘집단취락지구’로 지정했다.
양모씨 가족은 5년 전 송동마을로 이사했다. 배우자의 직장과 가깝고, 평소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었던 두 부부의 생각과 일치하는 마을이었다. 양씨는 블루베리 농장 인근의 단독주택을 매입해 직접 리모델링까지 했다.
정부가 서리풀지구 내 세 집단취락지구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면 이들은 송동마을을 떠나야 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단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되면 강제수용이 가능하다”며 “사전 협의 과정으로 토지보상 절차를 밟기는 하지만, 가격협상이 결렬되더라도 강제수용 요건은 충족하기 때문에 강제철거까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헐값을 부르던 과거와 달리 지금 토지보상시 책정되는 주택 감정가격은 해당 주택의 시세와 비슷한 가격까지 책정이 가능하다. 주택 자체의 가치, 부속토지의 가치, 이주 후 재정착에 필요한 각종 비용도 감정가에 포함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가를 받아도 이들은 이주 후 지금과 같은 규모의 집에서 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씨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의 대지면적은 197.41㎡로, 2020년 해당 주택을 사들일 당시 가격은 18억6000만원이었다. 송동마을 인근 아파트 단지 중 가장 큰 평형을 보유하고 있는 서초호반써밋 전용면적 165㎡의 직전 거래가는 32억원이다. 서초구 중심지역(서초동)의 3.3㎡당 가격은 1억원 안팎까지 오른 상태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떠날 생각이 없는데 토지보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송동마을 주민들은 정부 발표 이후인 지난해 11월25일 반대의견서를 모아 서초구청을 항의 방문했다. 양씨는 “(성당)신부님과 다함께 찾아갔는데, 당시 서초구청 담당직원의 반응은 ‘우리도 몰랐다’였다”면서 “서울시가 사전에 서초구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그린벨트 해제 발표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서리풀지구 마을 주민들 100여 명은 12일 우면동 성당에서 서초구청장, 서울시의장, 지역구 의원 등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다. 양씨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평생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앞으로도 맘 편히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주민공람 및 공고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기 전 준비단계라 국토부가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낼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민들간의 의사도 다르고, 원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보상방식 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