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북한군 생포 사실과 사진 공개
심문 통해 북·러 군사 협력 정보 확보 기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2명을 공개했다. 젤렌스키 텔레그램 갈무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북한군인 2명을 생포했다고 밝혔다. 생포된 20세와 26세의 북한군은 심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 참전이 아닌 훈련 목적으로 파견된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하는 등 참전 상황 일부가 드러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특수작전군 84전술그룹과 공수부대가 이들을 생포했다고 밝히고 사진을 공개했다. 현지 매체는 이들의 신상과 심문 내용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파병된 북한군을 생포해 심문을 벌이고 신상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생포된 북한군들은 부상이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키이우포스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쿠르스크에서 생포한 북한군이 각각 2005년·1999년생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영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해 통역을 거쳐 심문이 진행되고 있다. SBU는 “이들은 키이우로 이송돼 한국 국가정보원의 협력하에 한국인 통역사를 통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SBU의 심문 내용에 따르면, 2005년생 병사는 소총병으로 2021년 북한군에 입대했다. 지난 9일 생포될 당시 그는 시베리아 남부 투바 공화국 출신의 26세 남성으로 위장한 러시아 군인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 병사는 지난해 가을 북한 전투부대가 러시아에서 러시아 부대와 1주일 동안 함께 훈련받았을 때 이 신분증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그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아니라 훈련을 위해 파견됐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1999년생인 또 다른 병사는 자신이 2016년부터 북한군에서 저격 정찰 장교로 복무해왔다고 밝혔다. 턱 부상으로 말을 할 수 없어서 종이에 답변을 적는 식으로 심문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병사의 생포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신분증도 발견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2명을 공개했다. 젤렌스키 텔레그램 갈무리
SBU가 공개한 이들의 동영상에는 이들이 각각 턱과 손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운 모습이 담겼다. 의사는 한 병사는 안면 상처로 치과 치료를 받을 예정이며 다른 병사는 다리가 골절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SBU는 이들이 “국제법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적절한 조건에서 구금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침공 시작 당시 많은 러시아 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도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훈련을 위해 파견됐다고 주장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생포된 북한군을 통해 러시아의 작전 및 북·러 협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들의 신병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2명을 공개했다. 젤렌스키 텔레그램 갈무리
한편 러시아군이 북한군을 일종의 ‘미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망한 북한군 정경홍의 일기장을 입수해, 북한군이 세뇌를 통해 무모한 작전에 나섰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일기장에는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발견되면 3인 1조로 한 명이 미끼가 돼 드론을 유인하고 나머지 두 명이 드론을 정밀사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전술은 “드론이 발견되면 3명씩 모여라. 미끼는 드론으로부터 7m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다른 두 명은 10~12m 거리에서 드론을 격추할 준비를 한다. 미끼가 움직이지 않으면 드론이 멈출 것이고 (그때) 격추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간단한 손 그림으로도 표현됐다.
또한 일기장에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고사령관(김정은)의 명령을 주저 없이 수행하겠다”, “김정은 특수부대의 용맹과 희생을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 등의 각오가 담겼다. 정경홍은 지난달 21일 전사했다.
앞서 전장에서 북한군이 드론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올렉산드르 킨드라텐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대변인은 “그들은 이념적 사고방식과 세뇌로 인해 항복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WSJ에 밝혔다. 2019년 탈북한 북한군 출신 류성현씨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은 전투에서 죽을 경우 영광이라는 유산을 남기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북한군은 지난해 11월부터 러시아 쿠르스크에 파병됐다. 약 1만2000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중 약 4000명이 사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