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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쿠데타

12·3 쿠데타 사태의 종국은 최소한 윤석열의 파면과 구속, 그리고 쿠데타 가담자들의 법적 처리 등일 것이다. ‘최소한’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상황에 국한했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김건희와 그를 믿고 호가호위하던 세력들도 곧 그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의 등장 자체가 엽기적인 사태여서 그의 집권이 ‘정상적으로’ 종료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오다가, 예상보다 더 폭정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는,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든 임기를 제대로 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리라는 판단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고 아직까지 총체적인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경악스러운 정권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돌아보면 우리는 점점 눈앞에 펼쳐진 사실의 세계를 불신하다 못해 사실의 세계마저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지게 된 것도 같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속설이 있지만, 보이는 것을 소박하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니다. 이런 세상은 도리어 보이는 것 너머를 알고 있다는 가짜 예언자들을 양산하기 십상이고, 실제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런 부류의 지식인들로 넘쳐난다. 그러니 사건만 터지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분석과 의견과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쏟아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사건의 구조적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될 수도 있다.

윤석열, 권력 유지하려 북한 이용

12·3 쿠데타 사태의 전개 혹은 준비 과정에서 우리가 가십처럼 취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북한’이란 존재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나라는 다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말이다. 오늘날 ‘민족’이라면 고개부터 돌리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적잖지만, 민족에 대한 서구 학자들의 생각이 무엇이든 북한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남한과 대동소이한 언어와 풍습, 그리고 문화를 공유해온 같은 민족이다. 내가 ‘대동소이’라고 말한 것은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언어나 풍습, 문화의 지역적 차이가 없는 한 덩어리라고 부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그 내부에 지역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남한은 오랜 기간 동안 왕래가 자유로웠으며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고난과 환희를 공유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걸 깨뜨린 것이 해방 후 벌어진 분단과 전쟁이며 휴전 후에도 끝나지 않은 내전으로서의 현 분단체제다.

윤석열 쿠데타 세력이 이 민족적 상처를 이용해 자신들의 단일 통치체제를 구축하려 했다는 정황과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실 우리 역사는 이런 획책들을 넘어서며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번 12·3 쿠데타는 더 뼈아프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앞서 윤석열 쿠데타 세력이 그간 뱉어낸 언어를 보면 저들이 얼마나 분단을 이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시키려 했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이들을 ‘처단’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곧 이어진 분단과 전쟁이 저들의 정신적, 정치적 거점이었다는 게 너무도 자명해진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자들을 끊임없이 중용했던 것도 결국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상처에 기생하려 했기 때문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한몸이다. 그래서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는 것이 곧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극복하는 것이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극복하는 것이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는 일이 된다. 반대로 그 둘 중 하나를 긍정하게 되면 나머지 하나도 긍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즉 아직도 우리는 식민지를 살고 있는 셈이다.

다른 세상 위해선 분단 극복 필수

분단과 전쟁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해 백낙청은 이미 분단체제는 “식민성 특유의 인종/종족차별주의를 재생산”하며 “대치 중인 상대방 사람들은 단순한 대항자나 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간이 아닌 악마적 존재로 변한다”(<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 만들기>, 92~93쪽)고 했거니와 이는 윤석열이 발표한 계엄 포고령이나 그 이전의 언설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직도 분단과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식민지 상태라는 것을 뜻하며,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는,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는 것이 식민지 상태의 극복을 넘어 근대자본주의 극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식민지는 경제적 팽창을 그 속성으로 하는 근대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다음 세상은 분단체제 극복을 통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필수가 아닐 수 없다.

황규관 시인

황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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