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를 몰락시키는 이들에게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연일 뉴스를 보며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2020년대에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국회에 군인이 난입하는 모습을 전 시민이 지켜봐야 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지만, 뒤를 이은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선별 임명 등 대통령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내란수괴는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부정하며 관저를 요새화하고 있다. 지금 가장 자주 들리는 단어인 ‘법과 원칙’이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더욱 가중시킨 기관이 있다. 모든 시민의 인권과 존엄을 보호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이다. 지난 9일 김용원, 강정혜, 김종민, 이한별, 한석훈, 5명의 인권위원이 13일 개최되는 전원위원회에 긴급안건을 제출했다.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거창한 안건의 내용은 읽어볼수록 놀랍다.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므로 탄핵이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야당의 탄핵소추 남발이 국헌문란이라는,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면서 국회의장이 한덕수의 탄핵소추를 철회하고 탄핵소추를 남용하지 않을 것,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의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하고 심판절차를 정지할 것, 법원이 구속된 내란죄 피의자 등에게 보석을 허가할 것, 수사기관이 불구속수사를 하고 영장 청구를 남발하지 않을 것을 국가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으로 권고하고 있다. 내용의 문제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란공범인 권력자들을 철저히 비호하는 해당 권고가, 인권침해와 차별을 개선하는 인권위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해당 안건을 즉시 결재했고 13일 회의에서 논의가 이루어진다.

김용원, 이충상 두 상임위원이 만행을 저지르고, 혐오와 차별을 선동해온 안창호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인권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지속적으로 인권위의 위기를 지적하고 바로잡을 것을 촉구해왔다. 안 위원장이 지속된 인권시민사회의 요구에도 비상계엄에 대한 즉각적 입장을 내지 않고 끝내 하나마나한 수준의 성명이 나왔을 때는 분노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목도하고는 허탈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이 든다.

“계엄 선포 후 1500명의 병력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했지만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례는 없다”는, 윤석열의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는 궤변을 옹호하는 말을 하는 인권위 상임위원에게 무얼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해당 안건에 당당히 제안자로 이름을 올리곤 비판을 받자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참여했다”고 하는 김종민(원명 스님) 위원에게 무슨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권활동가들이 자조적으로 인권위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이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국가인권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는 2018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쿠데타 또는 국가비상사태에서 국가인권기구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각성과 독립성을 갖추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보장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 말대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 윤석열이 저지른 인권침해를 신속하게 규탄하고 비상계엄이 인권의 원칙에 반함을 분명히 하며, 지속되는 내란사태로 시민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점검하고 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한 권고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인권위라면 해야 할 역할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인권위를 만들어내야 한다.

조금 있으면 개최될 2025년 첫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내란에 동조하고 시민들의 인권침해에 외면하는 모습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없다. 안창호, 김용원, 강정혜, 김종민, 이한별, 한석훈에게 경고한다. 안건을 즉각 철회하라. 더 이상 그 자리를 더럽히지 말고 즉각 사퇴하라.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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