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 “(왼쪽) 니는 잘했나.” 가수 나훈아가 고별 콘서트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과 관련해서 던진 말이다. 테스형의 균형 잡힌 한마디가 아니라 무지성 또는 위선이다. 독재 대 민주주의, 헌법 대 반헌법의 대결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나훈아의 좌우 비유는 내란의 본질을 외면하는 무개념이고 본인이 인식하든 못하든 배경에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 있다. 마치 성폭행범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피해자의 품행이 어쩌고저쩌고 떠드는 미친 소리와 다를 바 없다. 개념 없음을 넘어 문제를 상대화해 성추행범의 형량을 줄이려는 못된 의도가 작동하고 있다.
윤석열이 야당 견제 없는 독재를 꾀하려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지 벌써 40일이나 흘렀다. 하지만 반헌법적 비상계엄에 대한 처벌 여부조차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내란 세력 척결에 주춤거리고 있다. 단죄를 넘어 권력구조 개편 등 근본적 시스템 결함을 손보기 위한 ‘그랜드 플랜’ 논의에 힘을 모아야 할 시점임에도 아직 내란이냐 아니냐를 두고 편을 갈라 다투고 있다. 윤석열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불법이라며 무시하고 관저에 차벽과 철조망을 두르고 경호원들을 겹겹이 세워둔 채 수성전을 벌인다. 수사권 논란 없이 내란 사태를 포괄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필요한 특검은 뻔뻔한 여당과 비겁한 관료들에 막혀 출범을 장담할 수 없다. 그사이 여론은 언제 내란이 있었느냐는 듯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으로 돌아갔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에 앞장선 ‘내란 옹호당’ 국민의힘 지지율은 34%로 비상계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내란까지 좌우, 여야의 대결로 치환하는 진영논리와 다 나쁜 놈들이란 양비론이 내란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 일부 보수언론이 탄핵 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원한 무기가 바로 진영논리와 양비론이다. 윤석열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려던 비상계엄을 두고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멈추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변호인단은 영장에 기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윤석열 체포 시도를 야당의 지휘에 따른 것으로 몰아가며 진보 대 보수 간의 “내전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극우세력의 내란 옹호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집권을 막고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둔갑시킨다.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 직후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내란을 단죄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며 보수층의 윤석열 탄핵 반대를 선동한 것이다. 탄핵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친북 색깔론도 빼먹지 않는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연일 ‘보수 괴멸 우려’를 제기하며 지지층 결집을 노린다. 한 보수언론은 비상계엄 사태 관련 첫 원로 인터뷰 제목을 ‘우리 사회에 화가 너무 많다’고 달았다. 내란 사태가 참선으로 해결될 문제인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진영논리와 양비론의 틀에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란 세력은 진영논리를 통해 내란 사태의 책임을 윤석열이 아닌 야당과 정치구조 탓으로 돌리고 정국을 물타기하려 한다. 민주당이 양심적 보수세력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분리시켜 탄핵 세력의 덩치를 키우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민주당을 탓하며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한 윤석열의 잘못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계엄을 한 윤석열도 잘못했지만 야당도 과했다는 양비론은 언뜻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책임 소재를 흐려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야 모두 함께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문제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탄핵소추된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내란 특검법 여야 합의 요구도 이와 비슷한 논리였고 결국 반동의 시간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비상계엄 옹호 세력은 야당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기에 앞서 윤석열 세력이 발표한 비상계엄 포고령부터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고, 파업과 집회가 금지되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다. 그 어떤 논리로도 이런 짓을 한 그들을 법적 처벌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다. 내란 세력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청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자부할 자격이 없다.

박영환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