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직원들 항의…‘윤 방어권 보장’ 상정 위한 전원위 불발
안건 주도한 김용원 상임위원에 “사퇴” 요구…일정 재논의

발길 돌리는 인권위원장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긴 안건 상정을 규탄하는 시위대에 막혀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13일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 상정을 위해 개최하려던 전원위원회가 시민단체와 인권위 직원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12·3 비상계엄의 위헌·불법성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인권위가 정작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윤 대통령의 ‘방어권’을 운운하며 계엄을 두둔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인권위는 이날 오후 3시 전원위를 열고 ‘(긴급)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상정하고 이를 심의할 예정이었다. 김용원 상임위원과 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 위원 등 인권위원 5명이 제출한 안건이다.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와 수사기관에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의 방어권을 철저히 보장할 것’ ‘윤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할 것’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안건 상정 배경으로 “계엄 선포는 대통령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등 계엄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았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이를 전원위 안건에 올렸다. 이날 안건 상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인권위 직원들은 ‘내란동조 세력은 인권위를 떠나라’ ‘헌정질서 파괴하는 인권위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를 벽에 붙이고 위원들을 기다렸다.
안건 상정을 주도한 김 상임위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격한 비판이 쏟아졌다. 인권위 직원들은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당신 같은 사람이 인권위원을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 상임위원과 한목소리를 내온 이충상 상임위원에게도 비판이 쏟아졌다.
김 상임위원이 “이러는 건 명백한 폭력” “계엄세력 동조라는 날조를 하지 말라”고 말하자 한 활동가는 “윤석열을 지키고 싶으면 인권위를 나가서 변호인단에 들어가라”고 맞받았다. 김 상임위원과 강정혜·이한별·한석훈 위원 등 안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안 위원장은 “현재 안건 상정 상태는 아니고 회의가 진행될 수 있게 해달라, 논의를 하려면 논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으나 직원들은 “동의할 수 없다”며 막아섰다.
오후 4시40분쯤 안 위원장은 인권위원 전원을 위원장실로 불러모아 회의 개최 여부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논의 결과 위원들은 이날 회의 개최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위원들은 다음주 전원위를 개최해 안건 상정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 방어권 안건 상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인권위 과장급 직원들은 긴급성명을 내고 “인권위 간부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일부 위원들이 위원회 모두를 ‘내란 공범’으로 내모는 사태를 좌시할 것이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힘을 보탤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를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시민의 인권을 짓밟은 이들을 옹호하는 것도 인권을 짓밟는 일”이라면서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안건이 상정되고 의결된다면 인권위는 그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