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기록 찾아 26년 ‘열정’
송기룡씨의 축구 사랑

28년 동안 대한축구협회에서 근무한 뒤 퇴직한 송기룡씨. 송씨는 잊히고 사라진 A매치 기록을 꼼꼼히 조사해 정리했다. 본인 제공
1948년부터 치른 986경기 망라
도서관 누비고 외국 신문 샅샅이
차범근 ‘센추리 클럽’ 승인 기여
“나에게 축구장은 치유의 장소
협회 퇴직했으니 더 뛰어야죠”
1998년부터 지금까지 국회·국립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40~50년 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신문을 뒤적였다.
‘혹시 숨은 기록이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 누군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대한축구협회에서 28년 동안 근무한 뒤 지난해 말 퇴직한 송기룡씨(60)는 그렇게 26년을 살았다.
송씨는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좋아한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무턱대고 협회를 찾아갔다”며 “내가 당시 PC통신 축구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걸 좋게 본 것 같다. 얼마 후 정식 면접을 보고 입사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1996년 9월 협회에 들어가 20년 가까이 홍보실에서 근무했다.
송씨는 축구를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아주 좋지만 몹시 나쁜 종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축구를 잠시 보기 싫어도 그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사람들이 종교에 빠지듯 나는 성격, 정서가 축구와 맞는다”며 “물을 머금은 잔디 냄새, 어떤 풍경보다 예쁜 파란 잔디, 멋진 경기와 골 등을 보면 뭔가 속에서 끓어오르고 머리가 맑아지며 가슴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축구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 선물과 같은 스포츠다. 축구가 없었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삶이 얼마나 재미없었을까”라며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일한다면 돈, 지위와 상관없이 그만큼 행복한 게 없을 것이다. 나에게 축구장은 치유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송씨는 지금도 심장을 뛰게 하는 골 4개를 꼽았다. 자신이 초등학교 3학년인 1973년 월드컵 예선 이스라엘전에서 차범근이 넣은 골, 1977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이스라엘전에서 최종덕이 넣은 35m짜리 중거리 골, 2002년 월드컵 직전 열린 스코틀랜드전 안정환의 칩샷 골, 2004년 부산에서 독일을 꺾은 이동국의 발리슛이다. 송씨는 ‘한국 최고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으로 손흥민이다. 개인 기량, 활약상에서 단연 최고”라며 “그전까지는 우아하게 공을 차는 기교파 최순호, 국제무대 개척자로 등장한 차범근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오랫동안 A매치 기록을 정리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꼼꼼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는 “내가 중학교 때 차범근이 독일로 진출했다”며 “프랑크푸르트 구단이 차범근 A매치 전적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협회가 기록이 없다고 답했다는 기사를 봤다. 내가 언젠가 그걸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2000년 차범근 A매치 기록만 먼저 정리해 국제축구연맹(FIFA)에 보냈고 센추리 클럽 가입을 승인받았다. 이후 김호곤, 박성화, 조영증의 센추리 클럽 승인도 그의 손과 땀으로 이뤄졌다.
송씨가 찾아낸 1948년부터 지금까지 치른 한국 A매치는 총 986경기다. 상대가 클럽이거나 대표 2진까지 포함하면 1315경기다. 그는 “골은 3~4경기를 빼놓고 모두 찾았다. 반면 출전 선수, 교체 시간은 아직도 20%가 미흡하다”며 “도움 기록도 1976년부터 지금까지 나온 건 다 찾았다. 그전 도움 기록, 지금은 청소년대표팀 기록까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생긴 1948년부터 기록을 뒤적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국내는 물론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 심지어 중동 신문까지 뒤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A매치 기록은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는 잘 정리돼 있다”며 “일본도 1920년대부터 대표팀 기록을 전부 갖고 있는데 우리만 없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2033년은 대한축구협회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송씨는 “지금 <한국축구 100년사>라는 책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부족한 게 적잖다”며 “‘한국축구사’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대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와 함께 A매치 기록을 모두 정리한 부록을 내는 것도 목표”라고 했다. 그는 “얼마 전에도 기록을 찾으러 도서관을 갔다 왔다”며 “이제 은퇴했으니 더 열심히 기록을 찾아 한국 A매치 역사를 정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